오점록 < 병무청장 jloh@mma.go.kr >

옛날 이집트인들은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두개의 접시가 달린 천칭저울이
있는 방을 거치게 되며, 이 저울로 생전의 그 사람의 선과 악을 측정한다"고
믿었다.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진실의 상징인 깃털 한개를 놓고, 반대편 접시에는
사람의 심장을 놓아 만일 두개의 접시가 평형을 이루면 그 사람은 착한 사람
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한 사람으로 판단해 기다리고 있던 괴물이 그 사악한
심장을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오늘날 진실과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법원이나 기타 법과 관련된
모든 것에 상징물로 사용되는 저울은 여기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병무행정은 정병을 선발하고 형평성있는 의무부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행정
이다.

그러나 형평성있는 병역의무부과와 정병선발은 깃털의 무게와 사람의 심장이
평형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행정과 관련 인터넷이나 전화 등을 통해 들어오는 민원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상대적인 불평등, 즉 형평성의 결여가 불만 요인
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업무이다.

특히 병역의무는 정신적, 육체적 자유를 제한하는 의무인 까닭에 다른 사람
과 비교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돌아가는 짐이 무겁다고 생각되면 이는 곧
행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형평성 있는 병역의무부과와 정병선발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만족
시키기는 더더욱 어렵다.

지난 십수년간 연 징병검사인원은 약 40만명 안팎인데 현역병으로 징집하는
인원은 그 절반이 약간 넘는다.

따라서 나머지 절반 가까이는 전문연구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복무
를 하거나 보충역으로 처분, 공익근무요원 소집을 하게 되며 신체허약자나
저학력자 등은 병역복무를 아예 면제받음으로써 군을 마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이나 불만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병역의무자에게 동질동량의 의무를 부과하기에는 현실
적인 어려움이 있다.

바로 이 점이 우리 병무행정인들의 고민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이 세상 모든 제도와 규율에 형평성이 완벽히 실현되기
위해선 심장의 무게를 깃털의 무게와 평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만큼의 노력
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또한 우리의 심장이 깃털만큼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결국 각자 욕심을 줄이고
사람들이 착한 심성으로 세상과 만날 때 가능하며, 그때 비로소 저울은 평형
을 이룰 것이다.

자신의 짐이 무겁다면 그만큼 다른 사람의 짐이 가벼워졌으므로 위안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때, 우리가 사는 이곳은 진정한 의미의 형평의
원칙이 지배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