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홍상화 >

1997년 9월 초순경, 동서대치 상황의 붕괴로 세계 유일 초강국이 된 미국이
돈의 위력과 무력의 힘으로 세계를 멋대로 주무르려고 할 때다.

이 시점에서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승리한 원인을 따져 꼭 한가지만 들라면
그것은 경쟁이라고 어느 학자는 주장했다.

비현실적인 높은 도덕성에 근거한 공산주의와는 달리 경쟁의 원리가 철저
하게, 그리고 무자비하게 적용되는 제도가 자본주의라는 말이다.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진 기업은 파산을 맞이하고 동료 경영인보다
비능률적인 경영인은 파면되며,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는 실직하게 되고
술수만 부리는 정치인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나라가 한반도 아래쪽에 있다.

한국이라 부르는 이 나라의 사회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관대함
이다.

세계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관대한
사회가 그 당시 한국이었다.

경쟁에서 뒤처진 기업인과 경영인이 살아남을 수 있고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가 산업현장에 머물 수 있으며 국민의 신의를 저버린 정치인이 보스
눈에만 들면 큰소리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대함 이 진정한 의미의 관대함이 아님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것은 후진성의 산 증표이며 또한 그들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80여일 후면 외환위기로 IMF 사태가 일어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그러한 가능성을 상상하기조차 거부하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산규모로 30대 재벌에 진입한 대해실업을 모체로
한 대해그룹의 방계회사 사장단 회의가 진행중이었다.

오후 5시 반이 가까워오자 회의는 드디어 막바지에 온 듯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하여 오후 5시 반까지 장장 3시간 반동안 마라톤 회의를
한 셈이었다.

창업자인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과 형 진성구의 경영권 퇴진으로 인하여
7년 전 경영권을 인수받은 진성호 회장은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라 전혀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나 황무석 부사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피로한
기색을 역력히 나타냈다.

하지만 진성호 회장의 시선이 무서워서인지 직사각형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참석자의 모습에 아직도 긴장감이 있긴 하나 눈빛은 흐려져
있었으며 황무석 부사장만이 57세의 나이에도 진성호 회장 못지않게 활기가
넘쳐 흘렀다.

모두가 와이셔츠 차림이었고 진성호는 소매마저 걷어붙인 채였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정리해 봅시다. 황 부사장이 오늘 회의내용을 정리해
주세요"

진성호는 황무석에게 시선을 보내면서,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맞는 인간형
이 있고 황무석은 현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황무석은 두뇌가 뛰어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자기 절제를 할 줄 알고
가족을 사랑하였다.

다만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양심이었다.

양심이라는 단어는 그의 사전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쓰레기 인간이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