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 아주대 교수 / 의무부총장 >

의사들이 거리로 나섰다.

지난해 11월30일 2만여명의 의사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올 7월부터 시행
예정인 의약분업 실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어 지난 2월17일에는 여의도 광장에 의료인 4만여명이 다시 모여 의약분업
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또한 정부의 반응여하에 따라 3월 중순 이후에 다시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의원이나 병원을 찾아올 환자의 곁을 잠시나마 떠나 진료를 중단한
채 거리로 나선 것에 마음 편할 의사는 하나도 없다고 본다.

추호도 환자에게 불편을 끼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환자의 곁을 떠나 여의도에 집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환자의 곁을 잠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 아닐까.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으나 어쨌든 보건복지부를 위시한 행정당국은 의사들
에게 끝까지 윤리적 측면에서 접근하였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시도가 초기단계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서로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다보니 의사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되고 만 것이다.

의사단체 및 의사들 사이에 흐르는 정서는 그간 보건복지부에게 너무 오랫
동안 기만당하여 왔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이젠 정부의 아무리 좋은 뜻이나 정책의지도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상태까지 와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하여 검찰력을 동원하여 시위에 대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대화의 문은 더욱 닫혀진 듯 싶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하여 의사들의 시위에 정면 대결
하겠다고까지 하고 있다.

실로 그 끝이 어디일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1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대규모
의사시위를 주도한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등 의료단체 집행부를
공정거래법 제26조(부당한 공동행위 제한)를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
단다.

실제로 2월23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각 단체 책임자들을 소환하여 그
책임을 물어 행정조치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으며 이러한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민주국가에서 집회 및 시위는 헌법상 보장된 시민이 가지고 있는 정당하고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이다.

민주국가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가 있다면 많은 이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공동의 의견을 수립한 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성숙된 사회일수록 이러한 과정과 절차가 존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당하게 사전 집회허가를 받고 의사단체가 주관한 이번의 단체행위
를 가지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왈가왈부하며 개입하는 양상은 정말 볼썽 사나운
행정부의 월권 행위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당장 대한약사회도 대규모 집회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수 많은 집회와 시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일일이 관여할 것인가를 묻고 싶다.

실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켜보기 민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방 선진국에서도 의사들의 집단 행위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의사들의 단체 행동에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기구가 개입
하였다는 말을 아직까지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너무 황당한 발상이 아닌가 싶다.

무소불위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권력을 남용하는 듯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느 나라나 의사들은 대개 보수적인 색채를 지닌 집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의사들이 거리로 나섰던 예는 없었다.

그런 의사들이 이번에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두고 현 정부 및
여당 책임자들이 이를 집단이기주의, 밥그릇 싸움 또는 가진 자들의 횡포
차원으로 간주한다면 정부는 의료복지정책의 핵심 부분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임을 함께 지적하고자 한다.

지금이라도 보건복지부의 책임자는 의사단체와 격의없는 대화로 문제의
해결점을 모색하여야 한다.

행정당국이 검찰력을 동원하고 더 나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입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면 의약분업의 갈 길은 너무도 멀고 험하기
때문이다.

< sungnack@madang.ajo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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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독일 뮌헨대 의학과
<>프랑크푸르트대 의학 석.박사
<>연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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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