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유럽연합 상공회의소(EUCCK)가 자동차 조선 은행 주류 등 14개 산업
분야에 대한 교역장벽 철페를 강력히 요구하며 여러모로 무리한 주장을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에 여전히 외국기업에 차별적인 요소가 남아있다"는 지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조와 재벌이 한목소리로 외국기업의 정부투자기업 인수에 저항
하고 있으며, 재벌의 시중은행 소유를 불허하기로 한 정부방침이 후퇴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연례적인 무역장벽보고서 수준을 넘어 내정간섭적인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기업을 외국기업에 인수시킬 것이냐 말것이냐는 해당기업이나 정부가
알아서 결정할 사안이되 우리국민이면 누구나 이에 대해 이해득실을 따질 수
있는데도 외국기업 차별이라고 트집잡는 것은 억지라고 본다.

재벌의 시중은행 소유여부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경제력집중 억제와 책임경영 실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이냐는 점을 놓고 오랫동안 논란을 벌였던 민감한 사안인데 어떤
이유로 제3자인 외국기업이 교역장벽 운운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제한규정을 철폐하는 문제도 이때문에 지난해 내내
재계와 노동계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마치 외국
기업에만 압력를 가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더구나 "일방적인 언론보도가 외국기업 차별에 강력한 지지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소비 실태를 고발하고 자제를 요청하는 보도 때문인듯 한데 입장을 바꿔
유럽경제가 우리 처지라면 유럽언론은 과소비 현상을 고무찬양할 것인가.

분야별 요구사항에도 무리한 주장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주세체계 자체를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라는 요구는 명백히
조세주권을 침해하는 무리한 주장으로서 국제적으로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외국계 은행의 자본금과 유동자본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문제도 이미 발표된
금융.외환자율화 일정에 따를 일이지 새삼스레 쌍무협상의 대상으로 삼기는
어렵다.

자국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역장벽보고서는 성격상 교역국 특유의 제도나
상거래 관행에 대해 으레 개선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방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경제상황을 봐가며
해야지 무조건 국제기준에 맞게 고치라고 우격다짐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김대중 대통령이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유럽 4개국 순방외교에 나선
시기에 때맞춰 일방적인 주장을 편 것은 외교적으로도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