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화에서 글로컬화(글로벌화+지역화)로''

세계 최대의 다국적 기업인 코카콜라사가 최근 더글러스 대프트 사장
체제로 최고 사령부를 바꾼 뒤 추진하고 있는 새 경영 전략의 핵심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고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더글러스 아이베스터 회장
체제가 세계의 입맛은 코카콜라로 통한다며 야심만만하게 추구해온 코카콜라
일극주의 노선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코카콜라는 그동안 일극주의 노선에 따라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소재한
본사에서 전세계의 영업 전략을 총괄 지휘하는 중앙 집권책을 펴왔다.

오는 4월19일 아이베스터 회장으로부터 경영 총수의 바통을 물려받기로
내정돼 있는 호주 출신의 대프트 사장은 그러나 코카콜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앙 집중적이고 독선적인 경영시스템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 그가 총수 후계자로 내정됨과 동시에 주도한 조직 개편을 통해
애틀랜타 본사의 임직원 3천여명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
에서다.

코카콜라가 미국 본사를 일극으로 하는 일방적 글로벌화에서 벗어나 각국의
특성에 맞춘 현지화 경영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는 비대한 본사 조직부터
수술해야 한다는게 그의 판단이다.

대프트 사장은 대신 각 지역 본사에 보다 많은 의사 결정권한을 위양하는
글로컬 경영을 본격 도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가 이런 비전을 내놓게 된 데는 최근 코카콜라가 각국 시장에서 연이어
겪은 마케팅 실패의 경험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최근 몇년간 세계 소프트 드링크시장의 완전 정복을 꿈꾸며
유럽계 음료 회사인 캐드버리 슈웹의 인수합병 등을 추진했다.

또 해외 각국의 마케팅 조직에 경쟁사 제품을 밀어내고 시장점유율을 한껏
높이도록 독려하기 위해 대대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조치에 대해 유럽과 멕시코 호주 등의 정부와 소비자
단체들이 코카콜라의 오만이라며 강력히 제동을 걸었다.

이런 와중에 작년 봄 유럽의 벨기에에서 어린이들이 코카콜라를 마신 뒤
집단 식중독에 걸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북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오염 콜라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코카콜라는 이런 사태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사과하고 생산 과정을
정밀 점검하는 등의 신속한 해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해당 지역은 물론 전세계의 소비자들로부터 코카콜라가 오만방자하다는
비난과 야유를 받게 된건 물론이다.

지난해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장 앞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던 세계 비정부기구(NGO) 조직 등 시민단체들이 오만한 다국적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코카콜라를 지목하며 규탄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대프트 사장은 코카콜라가 이런 궁지에 몰리게 된 근본 원인이 각국의
특수한 정서나 시장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채 장사를 해왔기 때문
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81년 이후 97년 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16년동안 코카콜라를 철권
통치했던 고이주에타 전 회장은 "세계의 모든 골목을 코카콜라로"라는
화려한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세계인의 입맛 통일을 자신했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민족적 자각 등 환경 변화는 그가 확신하고 꿈꾸었던
코크(코카콜라의 애칭) 만능주의가 통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대프트 사장이 무엇보다도 코카콜라의 큰 문제점으로 여기는 것은 안방
경영 행태다.

자신이 지난 91년 코카콜라의 아시아 그룹 본부장으로 임명받았을 때, 최고
경영층이 그에게 마련해준 사무실은 아시아 현지가 아닌 애틀랜타 본사에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수시로 아시아를 들락거려야 했지만, 현장을 직접 지키는
것에 비할 수는 없었다는 판단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경험과 최근의 상황 전개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현지 정서와 시장상황에 밀착하는 뉴 코크 비전을 완성한 것이다.

예컨대 코카콜라가 거두는 연간 이익의 20%를 기여하고 있는 최고 시장인
일본의 경우 소비자들이 콜라보다도 캔커피와 캔차 등을 선호하고 있는 점에
주목, 대응 상품을 보다 다양화하기로 했다.

경제 전문가들이 21세기의 새로운 화두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소비자
민주주의가 다국적 기업의 상징인 코카콜라에도 거부할 수 없는 변혁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