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철 < 크린토피아 사장 >

지난 97년5월 서울 당산동의 한 조그만 사무실.

14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산천기술이엔지"라는 회사를 설립한 김철
사장은 대표이사 명패 앞에 앉아 이를 악물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공조기기 기업을 일구겠다"

그러나 그 꿈은 6개월도 안돼 물거품이 될 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라는 뜻밖의 난관에 부딪친 것.

삼성엔지니어링 대기공조 등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푼푼이 모았던 돈으로
개발한 수천만원짜리 공조기기 위엔 먼지만 쌓여갔다.

직원들과 라면을 끓여 먹으며 김 사장은 와신상담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공조설비를 재활용한 IMF형 제품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날 그 순간적인 아이디어가 지금 김 사장이 자랑하는 재활용 공조기의
출발이었다.

김 사장이 지난 2년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재활용 공조기는 못쓰게
된 폐기 직전의 항온항습기나 공기조화기 등을 새 제품으로 다시 탄생시키는
것.

부품을 완전 해체해 약품 처리 등으로 세척한 뒤 추가적인 기능을 붙여 더
나은 기기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히 응축기 팬에 역회전하는 기능을 첨가해 필터에 붙어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인 게 특징이다.

실제로 재활용 전에 50% 정도의 효율을 보이던 제품의 경우 김 사장의 손을
거치면 90% 이상으로 높아진다.

신제품과 비교해 전혀 손색없는 제품이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재활용과정에서 컴퓨터와 전화를 이용해 원격으로 제어하고 보수도
할 수 있는 기능도 붙여 첨단기기로 탈바꿈시킨다.

기존의 부품을 다시 활용하는 만큼 신제품에 비해 가격은 40% 정도나 싸다.

신제품은 대당 1천2백만~1천3백만원.

그러나 김 사장은 재활용 공조기를 7백만원대에 팔고 있다.

더 중요한 건 공조기를 재활용하는 것이 환경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김 사장은 재활용 공조기를 개발하며 바로 이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한햇동안 약 15만대의 항온항습기와 공기조화기가 아무
대책없이 폐기됩니다. 여기엔 대당 20~30kg 정도의 프레온가스가 담겨있지요.
오존층 파괴 등 환경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규모입니다. 그런데도 산업용
공조설비의 폐기에 대해선 아무런 법적인 제한이 없습니다. 5백ml짜리 제품에
0.5kg의 프레온가스가 들어있는 가정용 냉장고는 회수를 의무화하고 있으면서
도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용 공조기를 재활용하는 것은 환경보호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김 사장은 말했다.

더구나 부품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공조기의 경우 더욱더
재활용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김 사장은 그래서 지금은 재활용 제품을 파는 것보다도 공조기의 재활용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식시키는데 더 열중한다.

"공조기를 재활용하면 좋다는 건 모두 인정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재활용
공조기를 만든다면 고물장수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지요.
뜻있는 사람들과 힘을 모아 산업용 공조기의 회수 의무화를 추진할
생각입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최근 한국통신 지하철공사 등이 공조기 재활용에
호응하고 나섰다.

지난해 신기술로 벤처기업에 지정되고 벤처기업박람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경력 등이 큰 힘이 됐다.

올들어 현재까지 1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금년중 총 1백8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게 김 사장의 목표다.

김 사장은 최근 회사 이름을 "크린토피아"로 바꾸고 도약을 준비중이다.

기술로 승부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게 그의 야심이다.

김 사장은 오늘도 사무실에 걸려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벤처기업"이란
글귀를 보며 기술개발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02)2637-5000

< 차병석 기자 chab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