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가 정부정책으로 상장회사부터 도입되기 시작한지 2년이 지나면서
겉으론 정착단계에 접어든 것 같지만 실상은 도입취지를 무색케할 정도로
기대 이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상장법인 사외이사 운용실태조사 보고서"에서 "기업
자율보다는 정부정책으로 무리하게 도입한 결과 사외이사제가 오히려 경영의
걸림돌이 되고 인건비부담만 늘어나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영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경험을 갖춘 인재가 부족하다 보니 전직
정치인 관료 단체장 등 기업으로선 괄시하기 힘든 이들의 ''과시용부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사외이사 타이틀을 따는 데에만 급급해 놓고 막상 이사회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들도 태반이고 참석해도 경영이슈에 대한 이해조차 못하는
사외이사들이 상당수라고 전경련은 지적했다.

해당기업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로서 현행법상 사외이사로 선임될 수
없는데도 편법으로 들어앉는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정부의 사외이사 추가확대에 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사외이사 모시기도 힘들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통신분야 중견업체
K사장은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모 대학교수를 소개받아 사외이사로 "초빙"
했다.

보수는 월 2백만원.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문제를 걱정하는 이 교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임원배상책임보험에도 들어줬다.

보험료는 물론 K사장이 내는 조건이다.

이사회에 참석해서도 경영진이 제시하는 안건을 그대로 통과시키기만 하는
"거수기" 역할만 하면 된다고 설득해서 가까스로 동의를 얻어 냈다.

주택은행은 사외이사에게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주는 파격적인 조선
을 내걸었다.


<> 겹치기 출연도 많다 =P사 모 임원은 "요즘 저명한 교수 등을 사외이사로
모시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며 "의뢰가 많이 쏠리는 유명 대학교수들중에는
2~3개사에 겹치기 출연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올 1월 현재 증권거래소에 등록된 상장법인 사외이사 수는 모두 1천2백81명.

6백36개 업체가 평균 2.01명을 두고 있다.

이중 상당수는 2~3개 기업에 사외이사로 중복 선임돼 있다.

현행법상 한 사람이 최대 3개사의 사외이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공기업의 운영이 허술하다 =한국중공업은 지난해 2~5월 대우가 발행한
무보증기업어음(CP) 2천억원 어치를 샀다.

지난해 7월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이 임박해지자 부랴부랴 채권확보에
나섰으나 8백억원은 회수하지 못했다.

이처럼 경영상 중대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사외이사들은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한국전력의 경우 전임 사장의 진퇴여부를 놓고 잡음이 생길 때 사외이사들
은 이사회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사기업보다 먼저 사외이사 제도를 운영중인 공기업들이 얼마나 사외이사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운영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 사외이사 사관학교생들은 홀대받는다 =낙하산 사외이사들이 판을 치는
반면 전문적인 사외이사 양성과정을 거친 인력은 오히려 기업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다.

한국능률협회의 경우 지난해 4월과 10월 사외이사 양성 아카데미를 개설
했다.

이 과정을 이수한 사람은 단 18명.

교육이수자는 대부분 대기업 인사나 관리팀의 실무자들이었다.

기업체 수요가 거의 없자 수강생의 발길마저 끊어졌다.

내달 12일 여는 사외이사 양성과정도 지금까지 단 2건만 신청됐다.

대한상의는 아예 지난해 개설한 사외이사 양성과정을 폐쇄했다.

지금까지 3기에 걸쳐 3백여명이나 배출했지만 과정 이수자중 유력기업의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게 상의측 얘기다.

< 정구학 기자 cgh@ked.co.kr 김성택 기자 idntt@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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