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인물의 일반적 평가기준은 신언서판이었다.

"춘향전"의 이몽룡처럼 용모가 수려하고 말이 유창하며 글시를 잘 쓰고 글을
잘 지어야 하는데다 판단이 정확하면 벼슬길이 활짝 열렸다.

충성과 효성이라는 유교적 도덕성이 전제됐던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런 포괄적 인물평가기준은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주의와 연공서열
을 중시한 인사제도에 뒤얽혀 당쟁으로 치닫는다.

한마디로 인재등용의 실패로 망한 것이 조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이 공천자 인선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다.

여야가 모두 참신성 개혁성 도덕성 전문성등을 내세워 "물갈이"를 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지만 어제 1차로 발표된 여당 공천자의 면면을 보면 꼭 기대를
충족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다시 그렇고 그런 정객들만 정치대열에 낄 염려도 없지 않다.

"신언서판"에도 못미치는 인선기준에는 아예 객관성이 없었지만 그 기준이
과연 그대로 지켜졌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신언서판"같은 포괄적 인물평가기준만 있었던
것일가.

조선조말의 철학자 최한기(1803~1877)는 50여년의 연구끝에 살아 움직이는
변화속에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저서인 "인정"에
실어 놓았다.

먼저 용모를 통해 개인의 기품과 자질을 분별한 뒤 그동안 그가 해낸 일을
통해 능력과 성과를 보고 그것이 도덕성에 합치하는지를 최후로 점검해 점수
를 매기는 인물평가법이다.

"사과별표"로 이름붙인 이 평가표의 항목은 모두 1천24개나 된다.

한국 최초의 인물고과표였던 셈인데 미처 실용되지 못하고 묻혀 있었던 것이
아쉽다.

이제는 우리 정당들도 쓸데없는 잡음을 피하기 위해 객관적 인물평가법을
만들어 공개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만민공동회"의 성토도 면할수 있을 것 아닌가.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추천된 자가 뇌물죄 등을 범하면 그를 천거한
사람도 연좌된다는 조항이 있다.

각당의 공천심사위원들이나 최후낙점을 하는 사람들이 새겨 두어야 할 대목
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