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황제 시스코 시스템스 ]

전화국 교환기에 해당되는 인터넷 접속기인 라우터를 만드는 시스코
시스템스(Cisco Systems,Inc.)는 인류 경제 역사상 아마도 가장 많은 신기록
을 세운 회사일지 모르겠다.

2만1천여명의 직원으로 연 매출 1백50억달러를 올리고 있는 점이며 직원
8명중 1명이 백만장자라는 점이 우선 그렇다.

상장(1990년) 이후 최단기간에 싯가총액 1천억달러(97년), 2천억달러(98년),
3천억달러(99년), 그리고 4천5백억달러(2000년 2월8일)를 돌파한 점 또한
그렇다.

시스코는 이것도 부족해 올해안에 5천억달러 돌파는 물론 세계 1위인
마이크로소프트(5천5백억달러)까지 제치고 1위에 등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90년 나스닥 상장 이래 지금껏 주가가 연평균 2배씩 뛰어 최초 가격의
1천배가 됐고, 매출액은 같은 기간 연평균 81%씩 늘어났다.

세계 인터넷 통신의 80%는 시스코 기계를 거치고 있다.

시스코 시스템스의 이같은 폭발적 성공은 기술력과 시운, 경영능력의 3박자
가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 덕분으로 여겨진다.

우선 기술력으로 따지자면 시스코는 인터넷의 원조격인 스탠퍼드 대학교
에서 시작됐다.

소련이 1957년 스푸트닉 위성을 쏘아올린데 자극받아 미국은 국방부 산하에
선진연구프로젝트청(ARPA)이라는 기관을 신설했는데 이 기관은 69년 인터넷
의 전신인 ARPAnet을 스탠퍼드연구소와 UCLA 사이에 처음 가설했다.

그리고 바로 이 ARPAnet을 탄생시킨 스탠퍼드연구소의 전통을 계승한 렌
보색과 샌디 러너 등 2명의 컴퓨터 과학자가 84년 한 벤처펀드에서 25억원을
지원받아 설립한 회사가 시스코다.

이들은 샌프란 "시스코"에서 뒷부분을 따 회사 이름을 지었다.

첫 상용제품은 86년 출시됐다.

시운 면에서도 90년부터 시작된 3중 파도를 제대로 탔다.

베를린장벽 붕괴 후 공산주의 국가들이 대거 세계경제에 동참하기 시작한
세계화 물결, 미국의 최장기 주식투자 물결, 그리고 월드와이드웹(WWW)으로
촉발된 인터넷의 대중화 물결 등을 더할 나위 없는 시점에서 포착했다.

경영 차원에서도 사심 없는 지휘자들을 참 잘 두었다.

1984~87년 기술개발단계에서의 창업주 경영이나 88~94년 인터넷 대중화
기반 완성기 동안의 재무 및 홍보전문가인 존 모그리지(John P Morgridge)
사장의 경영, 그리고 95년 이후 지금까지 인터넷 폭발기중 마케팅맨인 존
체임버스(John T Chambers) 사장의 경영이 모두 각 시대상황에 꼭 들어 맞는
것이었다.

특히 올해 50세인 현직 사장 존 체임버스는 웨스트버지니아 경영대와
인디애나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전형적인 경영학도로서 21세기 경영자가
갖춰야 할 스피드 겸손함 공정성 투명성 등을 모두 갖춘 사람이다.

그는 IBM에서 영업사원으로 6년간 일하며 권위적 경영에 진저리쳤고, 한때
미국 컴퓨터업계를 주름잡았던 왕(Wang) 컴퓨터에서 8년간 판매담당 임원
으로 일하며 고객을 무시한 경영의 말로를 체험했다.

특히 왕 컴퓨터에서 막판에 4천명의 부하 세일즈맨들을 해고하면서 인생
최대의 죄를 짓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이런 체험 때문인지 그는 전용 사무실없이 일반 프로그래머들이 쓰는
조그만 작업칸을 쓰며 여행할 때도 이코노미 클라스를 타고, 사무실 건축
이며 직원 채용, 비용처리 등 모든 것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운영한다.

시스코의 경영은 이 좁은 지면에서 감히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다만 한마디만 하자면 세상 무서운 줄 아는 편집광적 경영이 아닐까 한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