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경영은 빼어난 최고경영자(CEO)가 이끌어 가는 강력한 톱다운의
정책결정 방식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세계 초일류기업중 하나인 GE도 그렇게 알려져 있다.

불세출의 CEO인 잭 웰치가 기업을 이끈 지난 20년 가까운 기간동안 GE의
매출액은 4배나 늘었으며 싯가총액은 수십배로 폭등했다.

그러나 GE처럼 거대한 기업을 웰치 회장이 혼자 키워왔다는 얘기는 어딘지
석연치 않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최근호(1월17일)는 잭 웰치의 밑에서 각
부문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경영의 프로들, 그 중간관리층을 키우는 독특한
인재육성의 프로그램들이 GE를 떠받치는 진짜 힘이라고 분석한다.

이 잡지는 GE의 "리더양성기관"인 리더십개발연구소를 철저히 파헤친 후
인재육성의 5가지 철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자세히 소개한다.

첫째, 나이와 경험에 관계없이 기회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GE는 젊고 유능한 인재에게 책임있는 자리에서 실력 발휘할 기회를 준다.

GE메디컬시스템아시아의 CEO를 맡고 있는 후지모리(48)는 지난 1986년 GE에
입사했다.

그는 대학 졸업후 일본의 한 종합상사에서 유전개발부문을 주로 담당했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GE에 입사한지 불과 반년 후다.

웰치 회장 앞에서 중남미 의료기기사업의 프레젠테이션(설명회)을 하게 된
것이다.

후지모리는 "무척 긴장했지만 미국인 동료앞에서 30번 넘게 연습했던 덕분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후지모리는 GE메디컬시스템아시아의 시장개발부장으로 발탁됐으며 이 회사
의 CEO에 취임한 후 2년간 매출액을 두배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보여 주었다.

둘째, 부하를 차세대 리더로 육성하는 인물을 높이 산다.

일반적 기업에서는 출세에 눈이 먼 상사들이 부하직원의 공적을 가로채거나
라이벌로 여겨지는 사람을 제거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러나 GE는 "부하직원을 리더후보로 육성하는 능력"이 곧 리더의 조건중
하나로 꼽힌다.

상사가 부하직원을 다음 세대의 리더로 육성하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그
상사 자체가 "리더로서는 실격"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셋째, 보편적인 경영기술을 연마시킨다.

GE는 어떤 사업에라도 통용되는 보편적인 경영기술을 갖는 리더의 육성에
힘을 쏟는다.

리더십개발연구소에서 연수를 받는 관리직들은 업무분야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끼리 팀을 이뤄 각각의 사업이 안고 있는 경영과제의 해결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팀은 비록 사내에서 모인 사람들이지만 마치 사외에서 합류한 컨설턴트의
집단처럼 의견교환이 가능해진다.

팀원들은 자신의 부서로 돌아가서도 품질개선운동인 6시그마처럼 전사적인
틀을 통해 빈번하게 접촉의 기회를 갖게 된다.

넷째, 우수한 리더일수록 어려운 임무를 맡긴다.

일본 기업이라면 촉망받는 리더에게 핵심사업의 이른바 "꽃보직"을 부여
한다.

본인도 가능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은 곳에서 경력을 쌓고 싶어한다.

그러나 GE에서는 우수한 인재일수록 신규사업이나 실적이 부진한 곳에 배치
한다는 방침이 있다.

리더는 부진한 사업을 정상화시키고 경쟁력을 제고시킨다.

우수한 리더는 회사안에서 가장 곤란한 지경에 놓인 사업부문으로 전진배치
된다.

다섯째, 실패해도 얼마든지 만회가 가능하게 해준다.

곤란한 업무에 도전하게 되면 당연히 실패 확률도 높다.

이럴 때 자신의 실패를 만회할 다양한 기회를 준다는 점이 GE가 갖고 있는
인재육성 방식의 특징이다.

웰치 회장의 출신사업인 GE플라스틱에서 마케팅디렉터를 하고 있는 이시가와
(43)는 일본의 종합상사에서 7년간 근무한 후 88년 GE재팬의 사업개발추진
매니저로 입사했다.

입사후 한동안 담당했던 일이 GE 냉장고를 일본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무명이었던 GE 냉장고를 양판점을 통해 팔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결과는 지지부진.

이시가와는 혹시나 이대로 좌천되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에게 별도의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내 GE플라스틱의 자동차부품 마케팅매니저 자리였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겠다는 일념으로 업무에 임했습니다"

지난 95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때 그는 GE플라스틱의 비즈니스 리더란
직책을 얻을 수 있었다.

< 박재림 기자 tr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