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풍속의 유래를 들여다 보면 우리의 통념을 뒤엎는 엉뚱한 발상에서
그것이 시자가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게된다.

"발렌타인 데이"라는 연인들의 명절도 시작은 엉뚱하다.

기원전 4세기 초부터 로마인들은 새들도 짝을 찾는다는 발정기인 2월중순
루페르쿠스 신 앞에서 젊은 남자들의 통과의례를 거행했다.

그들은 상자속에 들어 있는 10대 소녀들의 이름을 임의로 뽑아 결혼도
하지않고 1년동안 함께 살았다.

제비뽑기식 짝짖기다.

이것은 고대인들의 풍요의식의 하나였다.

기독교가 로마에 정착한 뒤에도 이 풍속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469년 교황 겔라시우스는 루페르쿠스축제를 불법으로 선언하고 소녀들의
이름대신 가톨릭 성인들의 이름을 써넣고 뽑도록 했다.

루페르쿠스 축제가 교회의 명절로 바뀐 셈이다.

이 행사의 수호 성인이 발렌타인이다.

270년 로마의 클라디우스황제는 전쟁수행을 강화하기 위해 금혼령을 내렸다.

그때 안테람나의 주교였던 발렌타인은 몰래찾아 오는 젊은 연인들에게
결혼식을 올려주다가 발각돼 그해 2월14일 순교했다.

발렌타인은 루페크루스 축제의 인기를 빼았을 수 있는 교회내의 가장
이상적인 후보였던 셈이다.

사람들은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는 날로 그의 순교일을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가톨릭에는 발렌타인축일은 없다.

금년 발렌타인 데이는 더 오란스러워 보인다.

우리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도 이 날이 낭만적 "연인들의 날"로 정착돼
가는 때문일까.

초콜릿 가게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호텔가 식당가는
물론이고 사이버 공간까지 이벤트 행사들로 붐빈다.

프렌치키스대회, 즉석연인만들어주기, 키스마크남기기, E메일로 키스보내기
등 이벤트가 모두 섹스쪽으로 기우렁져 있는 것은 요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넌 내꺼야"라는 선물용 팬티도 나왔다던가.

무서운건 장사속이다.

발렌타인 데이가 고대로마의 제비뽑기식 통과의례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 책임은 낭만적 사랑에 빠진 젊은이에게 돌리기보다는 마땅히 기성세대가
져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4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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