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9일 2단계 4대부문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하드웨어적인 개혁은 어느정도 이뤄졌다고 보고 앞으로는 경제의 투명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소프트웨어 개혁에 주력하겠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하드웨어적 개혁이 마무리 됐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경제시스템을 선진화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적 개혁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개혁의 내용이다.

경제시스템을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제도 의식개혁이 필요하나
그 중에서도 관치금융 청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치금융하에서는 "보이는 손"에 의해 자원이 배분돼 경제의 투명성
효율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치금융 청산 필요성은 우리의 금융현실을 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 추진으로 정부의 금융기관
지배력이 현저히 높아졌다.

여기다가 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약정, 워크아웃 계획 등에 의해 줄줄이
금융기관 지배 밑으로 들어가 "국영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치
금융이 심화돼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의 개혁추진 방안에는 가장 시급한 관치금융 청산방안이 제시돼
있지 않다.

오히려 3천4백개 대기업의 자금거래에 대한 모니터링 등 정부개입 강화를
시사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현재와 같은 구조 아래서 대기업에 대한 자금거래를 금감원이 일일이
모니터링하겠다는 것은 금융뿐 아니라 민간기업에까지 관치를 확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관치금융 청산은 금융기관이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금융논리에 입각해
영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유화된 은행을 조속히 민영화하고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선결과제다.

정부가 금융기관의 대주주로 있거나 금융기관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황하에서는 관치금융 청산이 헛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치금융 청산을 위해 국유화된 은행을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 민영화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물론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기관 사금고화를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우가 과점주주였던 한미은행보다는 주인이 없었던 은행들의
대우여신이 더 많았다는 사실은 사금고화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경환 < (경박)논설.전문위원 kghwchoi@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