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실 <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조세연구실장 >

새 천년 초부터 국내외 금융시장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유로화 가치가 폭락했는가 하면 미국의 금리인상이 단행됐다.

또 엔화 가치가 예상밖의 약세로 돌아섰다.

이런 요인 탓에 국내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연일 출렁거리고 있다.

"묻지마 투자"가 재연되고 금리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자금의 단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표만 본다면 국내 금융시장은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거시경제 운용지표
만큼이나 안정적이다.

그러나 실상은 3대 가격변수인 금리 원화가치 물가 등이 모두 상승압력을
받고 있다.

올해 경제운용이 만만찮을 것이란 의미다.

올해 금융시장 역시 지난해보다 더 어렵고 불투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취한 정책은 시장개입과 같은
극단적인 처방이었다.

대우그룹 유동성 문제로 인해 위기의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불가피했던 건
인정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시장개입은 금융시장 불안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보다는
이를 늦추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앞으로 위기가 재연될 여지가 있다.

또 투자자 등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다시 한번 보호해주는
선례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금융의 정상적인 발전을 지체시켰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결국 상당부분 국민의 부담으로 남을 투신사와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의
손실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모두가 지난해 피치 못할 상황에서 초래된 결과라 치더라도 금융시장
위기 해결의 뒤풀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행히 그동안 금융시장에 그늘을 드리웠던 대우채권 환매문제가 지난
2월8일 법인에까지 지급률을 95%로 높였는데도 정부의 유동성 지원대책으로
큰 어려움없이 진행되고 있다.

예상보다 환매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자 이제 금융시장의 악재는
끝났다는 성급한 판단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투신사 수익증권이 안고 있는 문제의 노출은 이제부터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금융기관에 대한 대우채권 환매 허용문제가 남아 있다.

또 오는 7월 기존펀드에 대해 채권 싯가평가제 도입도 금융시장을 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할 충분한 위력을 가진 재료다.

지난번 나라종금 영업정지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우그룹 관련 연계콜 문제도
어떤 형태로든 해결해야 한다.

최근 한은과 재경부가 이견을 보이고 있는 장단기 금리차 축소문제도
시장기능 회복을 위해 분명히 빠른 시일내에 해결돼야 할 과제다.

5%를 웃도는 장단기금리차는 각종 거시정책의 유효성이나 금융시장
안정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통위는 10일 콜금리를 4.75%에서 5.00%선으로 올리기로 했다.

그래도 한국의 콜금리는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지나친 장단기 금리차는 재경부와 한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이 빚어낸
산물이다.

인위적인 단기금리 억제는 금리의 시장조정기능을 상실시키고 인플레이션
기대를 가져와 결국 장기금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반면 불안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단기금리 인상은 장기금리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다.

따라서 점진적으로 단기금리를 인상하되 물가불안 심리와 금리상승 기대를
해소시키는 데 재경부와 한은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채권시장이 지난 하반기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있으면서도 시중자금
흐름에 별다른 애로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정부가 부채비율 인하를 추진
하면서 기업자금수요가 주식시장으로 집중됐기 때문이다.

지난 한햇동안 40조원에 달하는 산업자금을 공급하면서 대기업 채무조정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주식시장을 과소평가하거나 세계적 증권화 추세를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특정시장으로의 자금편중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외환위기의 교훈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그동안 물가와 경상수지 적자폭을
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 왔던 환율정책을 금리정책과 연계하는 것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각국의 동조적인 금리인상은 국경없는 경쟁
시대의 국제적인 부동자금을 의식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국 한국의 환율 금리 등 정책변수 운용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국내 금융시장은 겉으로는 잔잔한 바다처럼 보이나 언제 폭풍이 몰아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제라도 조기경보시스템을 보완하고, 명목수치보다는 금융시장 전반의
내적인 흐름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것만이 연초부터 시작된 국제 금융시장의 변화무쌍한 소용돌이에서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이 살아남는 길이다.

< insill@keri.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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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박사
<>휴스턴대 조교수
<>하나경제연구소 금융조사팀장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