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목 < 학산 사장 >

학산은 두부공장을 갖고 있다.

매주 목요일 퇴근때 전직원에게 두부를 나눠준다.

청정수와 유기농으로 재배한 콩으로 만든 두부다.

두부를 받아든 직원들은 부쳐서 간장에 찍어 먹거나 찌개에 넣어 끓여
먹는다.

이원목 사장은 독특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비트로피아 (Vitropia)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브랜드인 비트로에 유토피아를 붙여 만든 것이다.

직원들을 위한 이상향이다.

두부공장은 이를 위한 첫 걸음.

우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식생활부터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어 자녀교육 주거문제 노후생활까지 회사에서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다.

본사와 공장을 3년내 녹산공단으로 이전키로 했다.

이곳에 사옥과 공장을 마련하고 인근에 2천~3천평규모의 텃밭도 만들
계획이다.

장학사업과 노후보장플랜도 세우고 있다.

이 사장은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엄격하다.

철저하게 내핍생활을 한다.

그는 수백번 해외출장을 다녔지만 한번도 비즈니스클래스 자리에 타본 적이
없다.

호텔에서 잔 것도 손으로 꼽을 정도다.

해외 공장의 기숙사가 숙소다.

중국 출장시엔 주로 초대소에서 잔다.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건물에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와 녹차 한병이 놓여있는
곳이다.

그런데서 자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고 한다.

이런 철학을 갖게 된 데는 까닭이 있다.

삼화를 거쳐 외국계 회사에 4년동안 근무했었다.

이때가 지난 80년대 중반.

한국상품을 구매하는 바잉오피스인 미국계 회사였다.

극동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던 그에게 어느날 직원 17명중 절반을 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시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버텼다.

미국식 경영을 한국에 접목시키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항의했다.

동고동락해온 직원을 자기 손으로 자를 수는 없었다.

차라리 자신이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이때 전직원이 그와 함께 회사를 나왔다.

이게 모체가 돼 출범한 회사가 바로 학산이다.

부산 연지동 20평 규모의 사무실에서 문을 연게 88년.

자신을 믿고 나와준 직원들이 창업멤버다.

이들을 분신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은 학산의 중견간부로 뛰고 있다.

미국회사는 그 뒤 학산을 통해 한국제품을 구매해오고 있다.

그는 12년동안 직원의 월급을 올리면서 한번도 자신의 월급을 올리지
않았다.

또 배당을 받은 적도 없다.

전부 사내에 쌓아뒀다.

연말에는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아 소리없이 돕고 있다.

"저도 외국브랜드 제품을 만들면서 쉽게 살 수 있습니다. 돈도 벌 수
있고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누군가는
세계적인 신발브랜드 한개쯤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외국브랜드를 선호하고 외국제품을
찾으며 자라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이 일에 얼마나 많은 자금이 투입될지 또 얼마나 세월의 퇴적층을 필요로
할지 몰라도 자신이 앞장서서 가시밭길을 걷겠다고 다짐한다.

< 김낙훈 기자 n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