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교통부가 내년부터 공공공사 입찰때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게
공사를 맡기는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지부진한 건설업계의 구조조정 촉진을 위해서는 최저가 낙찰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는 최저가 낙찰제 시행에 따른 저가 수주경쟁과
부실시공 가능성을 거론하며 제도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기술력이나 자금력이 빈약한 중소업체들은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무더기 도산을 피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최저가 낙찰제에 대한 토론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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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현규 < 건교부 건설경제국장 >
김준한 < 건설산업연 연구본부장 > ]

-최저가낙찰제를 도입하는 배경은.

<>한현규 국장=국내 건설시장 규모는 세계 9위다.

그러나 기술경쟁력면에서는 25위 정도다.

엔지니어링 분야는 훨씬 더 처진다.

한마디로 경쟁력이 없다는 얘기다.

이번에 입찰제도를 개선하려는 것은 건설업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김준한 본부장=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도를 바꾼다는데 공감한다.

그러나 국내 건설업계가 직면한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제도 도입 속도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업체의 재량권이 적은 현실을 감안하면 점진적으로 새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국내 건설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가.

<>김 본부장=건설경기는 지난 95년부터 하강국면이다.

여기다가 외환위기 이후 민간부문의 건설경기가 급격히 위축돼 최악의
상황이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외환위기 전과 비교할 때 공사물량은 40% 감소했다.

그러나 건설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어 업체수는 50%가 늘었다.

이러다 보니 수주경쟁이 치열해지고 채산성은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건설업 전체가 적자상태에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한 국장=건설업이 그동안 나눠먹기식 관행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등록만 하면 뭔가 먹을 게 있는 산업으로 인식돼온 탓이다.

그래서 업체수가 무더기로 늘어난 것이다.

-건설업계가 최악의 상황에 있는 것은 과다경쟁에 따른 낙찰률 저하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한 국장=예전에는 담합을 통해 평균적으로 공사예정가 90%수준에서
수주했다.

그러나 업체수가 늘어나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져 담합이 없어졌다.

현행 제도하에서 마지노선이라는 예정가 73%수준까지 낙찰률이 내려왔다.

이익이 17%포인트 줄어든 셈이다.

<>김 본부장=낙찰률이 낮아진 것은 민간부문 건설투자가 60%이상 감소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전체 건설물량중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서 60%로 늘어나자 건설업체들이 공공공사 수주에 너도나도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가 낙찰제가 도입되면 건설업계 채산성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현재 건설업계 전체가 적자상태라면 심각한 상황이다.

퇴출돼야할 기업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어서인가.

아니면 채산성이 없도록 돼있는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한 국장=두가지가 모두 해당된다.

다른 산업의 경우 경쟁력이 없는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시장이 위험경고를
해서 퇴출을 촉진시킨다.

예컨대 한보나 기아가 망할때 주거래은행이나 주식시장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퇴출과정을 신속히 진행시키는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은 종착점에 가서야 이같은 신호가 나타난다.

건설업은 회계 투명성이 없어 금융기관이 대출을 꺼려 금융기관과 격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부실기업도 살아남아 과도한 출혈경쟁을 하게돼 채산성이
악화되는 것이다.

<>김 본부장=건설산업이 수주산업이라는 특성에도 기인한다.

수주산업은 제품생산 기간이 길고 불확실성이 높다.

이러다 보니 그때 그때 퇴출도 어렵고 금융기관도 대출을 꺼린다.

건설업이 국내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지만 대출비중은
7%수준에 불과하다.

-최저가 낙찰제는 과거에도 여러번 시행했던 제도다.

이번에 또 이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국장=최저가 낙찰제는 궁극적으로 가야할 방향이다.

세계적인 추세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여러번 시행해본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도입하려는 최저가낙찰제는 과거와는 근본이 틀리다.

예전에는 제대로된 PQ(사전자격심사제)가 없었다.

감리도 마찬가지였다.

금융기관 이행보증도 없었다.

현재는 이같은 전제조건들이 어느 정도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제도도입을 늦출 필요가 없다.

<>김 본부장=아직까지 여건이 성숙됐다고 볼 수 없다.

우선 PQ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발주자별로 구분해서 PQ를 심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현행 제도는 조달청 등 중앙기관이 발주처를 대신해 심사하고 있다.

발주처의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문성이 없다면 민간 컨설팅업체를 활용하면 된다.

내역입찰제도도 문제다.

발주자가 미리 공종별 인력 자재 투입 정도를 표시해두고 주어진 물량에
단가를 곱하면 바로 가격이 나온다.

선진국처럼 발주자는 설계도면과 시방서만 주고 업체가 물량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금융기관이 건설업체를 이해하고 있는 정도가 낮다는 점도 문제다.

따라서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한후에 최저가낙찰제를 도입해야 한다.

서두르면 이번에도 실패할 수 있다.

-건설업계에서 가장 염려하는 것은 최저가낙찰제가 도입되면 채산성이
더 떨어지지 않을까하는 점인 것 같은데.

<>김 본부장 =물량이 아주 축소된 상황에서 최저가 낙찰제가 되면
가격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PQ에서 엄격하게 거를 장치가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PQ가 개선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덤핑입찰에 따른 무더기 도산과 부실시공이 우려된다.

<>한 국장=과거 통계를 보면 저가낙찰과 부실시공은 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부실시공된 공사의 낙찰률 조사를 하면 90~95%가 수두룩하다.

물론 이론적으로 보면 저가가 부실을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업체의 견실시공의식과 정부의 감리감시가 더 중요하다.

또 금융기관으로부터 공사이행보증채권(Performance Bond)을 첨부토록
할 계획이어서 저가낙찰은 방지가 가능하다.

너무 낮은 가격으로 응찰할 경우 어느 금융기관이 이행보증을 해주겠나.

-이행보증을 강제화하는데 따른 부작용은 없나.

<>한 국장=부작용과 순작용이 동시에 있다.

일단 금융기관에 가서 이행보증을 받을만한 건설업체가 거의 없다.

건설업체 재무재표가 신뢰성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같은 문제때문에 업계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재정상태가 건전하고 회계장부가 투명한 업체만이 살아남을 것이란 얘기다.

<>김 본부장=장기적으로 이행보증을 활성화시키자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건설업체의 비용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자금력이나 기술력이 취약한 중소업체들은 최저가 낙찰제 도입이 치명타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많은데.

<>한 국장=도급상한선에 따라 대형업체와 중소업체가 따낼 수 있는 공사가
다르다.

같은 범주내에 있는 업체끼리 경쟁을 하게된다.

대형업체가 중소업체 일감을 뺏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 본부장=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가 공사실적에 있다.

공사실적은 대형업체들이 모든 공종에 있어 실적이 많다.

그걸 기준으로 변별력을 높이면 중소업체는 점수가 낮아진다.

능력있는 중소업체들조차도 등급이 낮아지게 된다.

대형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국장=변별력 기준에는 실적 기술능력 재무상태가 있다.

중소업체는 재무상태에서 유리하다.

실적과 재무상태에 대한 배점비율을 적정히 유지해 중소업체가 불리해질
수 있는 여지를 없애겠다.

< 정리= 송진흡 기자 jinhup@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