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이 종업원들의 가정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가족주의 경영"이다.

지금도 여전히 효율주의와 능력주의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미국의
기업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다.

종업원의 가족과 생활에 신경을 쓰는 기업들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플러스가 되며 강한 기업으로 거듭나는 초석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는 최근호(1월24일자)에서 이같은 미국 기업들의
변화를 미시적인 관점에서 전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급격히 퍼지게 된 SOHO(Small Office Home Office)는 이익과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종업원에게 직장과 가정을 균형있게 유지시켜
주려는 미국 기업들의 전략이 낳은 산물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1시간30분정도 달리면 나오는 산타로사.

언덕 위에 자리한 작은 초등학교 앞에는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로 자동차가 장사진을 이룬다.

아이들을 내려준 후 자동차는 주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학교 바로 옆문으로 들어간다.

초등학교는 지난해 휴렛팩커드(HP)에서 자신의 땅과 30만달러의 돈을 대
지은 것이며 학부모는 대개 이 회사의 종업원이다.

부모들은 서둘러 옆문으로 출근하는 경우도 있고 그대로 교실안으로 들어
가기도 한다.

근무시간을 조정, 오후에 출근해도 되는 부모들이 자원봉사 단원으로 아이들
의 수업을 참관하는 것이다.

때론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종업원의 가정이 맞벌이인 경우 이같은 기업내 학교는 특히 높은 인기를
누린다.

HP는 주당 한시간씩 학교봉사활동을 하는 조건으로 종업원들의 근무시간을
줄여 줬으며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을 회사로 불러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정확한 계산을 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이같은 기업내 학교는 아이들과
기업 모두에 결코 손해가 되지 않는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마크 맥과아이 교장은 "아이들의 잠재능력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부모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가가 중요하다"며 학생들의
학업태도나 성적이 향상된다고 말한다.

회사의 홍보관계자도 "종업원의 이직률이 크게 낮아졌으며 업무 효율이
향상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뉴저지주에 있는 존슨 앤드 존슨(J&J)도 종업원의 가정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기업이다.

J&J에서 실시중인 것 가운데 "사내탁아소" 제도는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1990년 제1호 탁아소가 본사 건물내에 만들어진 이래 최근까지 뉴저지주
에서만 5개소가 개설되고 펜실베이니아주 지사에도 하나 생겨났다.

9백여명의 아이가 맡겨져 있다.

회사는 건설비용만으로 4천5백만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컴퓨터와 음악교실이 있으며 주 1회는 부모들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집에
돌아가 데워 먹을 수 있도록 저녁식사를 준비해 주기도 한다.

아이를 맡기고 있는 부모들은 대만족이다.

두번째 아이를 출산한 후 3개월만에 직장에 복귀한 파멜라 메이슨은 "업무
를 하다가도 시간에 맞춰 젖을 물릴 수 있고 회사의 공공연한 지원이 있다
보니 상사나 동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현재 종업원의 51%가 여성인 J&J에서는 80년대말 "워크포스 2000"이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앙케트 조사를 했다.

이때 나온 대다수 의견이 "일터와 가정에 대해 균형있는 생활"이라고 한다.

이처럼 종업원의 가정을 배려하는 경영은 아직까지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
지고 있다.

일부 초우량기업에 다니는 엘리트 사원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워크.라이프 이니시어티브"란 프로그램을 담당
하고 있는 샤론 클랜은 "생산성이 높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생활환경이 안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며 "회사의
배려가 결코 선의를 베푸는 차원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이들 회사가 원하는 것은 기업과 가정의 일원화를 통해 결과적으로 보다
강도 높게 효율과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 박재림 기자 tr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