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 네이버컴 사장 haejin@naver.com >


"세상 고민이 없어서 심심하십니까? 그러면 주식을 사십시오"

내가 "주식"이란 걸 처음 산 것은 1992년말이었다.

주식을 사게 되자 신문을 읽는 패턴이 달라졌다.

그동안 지나쳐버리던 경제면의 모든 기사들이 눈에 박히기 시작했다.

내가 산 주식과 관련있는 회사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 동향, 나아가 나라
전체의 경제가 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때 한 소주회사의 주식을 산 후에는 친구들과 술먹을 때 무조건 그 회사
소주만을 주문했다.

주식관리인의 추천으로 건설주를 산 적이 있다.

700선에 있던 주식이 1,000포인트까지 급등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종목이 빨강색 상한선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이 때 유일하게 혼자 하락하고 있는 종목이 있었으니 바로 건설주들이었다.

아침에 신문 보기가 짜증나기 시작했다.

주식관리인도 싫고, 주식으로 돈벌었다고 떠드는 사람도 싫고, 나아가
사회의 모든 게 싫어졌다.

아무리 "괜찮다, 얼마 안되는 돈"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도 모든 일에 의욕
이 없어질 지경이 됐다.

요즘 온 나라가 주식 열풍에 휩싸인 느낌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화제는 주식이고 서점에는 "주식으로 얼마번 싸나이"풍의
책들이 넘쳐난다.

직장인들의 PC는 주식관련 사이트에 모두 접속돼 있고 대학가의 전산실
마저도 대학생 주식투자로 성황이다.

이같은 주식 열기는 예전과 다른 특징이 있다.

이는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트레이딩의 보급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젠 누구나 PC 앞에서 얼마든지 주식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스템이 승부욕(?)과 단기성과욕(?)이 강한 우리의 주식 매매
패턴과 만나 엄청난 상승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온라인 트레이딩 규모는 당당 세계 1위다.

이런 주식투자 열기에 대해 개인적으로 부정적이다.

주식은 돈을 많이 번 몇몇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에게 "상대적인"
불행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얼마전 뉴스위크 표지에는 "아니 나 빼고 모두 부자가 되었잖아?"라며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의 모습이 나왔다.

요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이런 심정으로 하나 둘 주식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 1위의 온라인 트레이딩 규모가 상대적 불행지수 1위로 표현되어지진
않을지 걱정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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