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승 SK그룹 회장은 최근 경총이 주최한 연찬회에서 기업들이 생산활동과
무관한 사회적 비용을 너무 과중하게 부담하고 있다며 이는 기업의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경쟁력이 약한 탓에 외환위기를 겪게 됐고, 지나치게 무거운
준조세도 경쟁력을 떨어지게 만든 여러 요인 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요즈음은 총선을 앞둔 시점이어서인지 재벌그룹에 회장을 찾는 정치인들의
전화가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준조세가 너무 많고 무겁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97년 기준 준조세성 경비의 규모는 8조1천3백64억
원으로 그 해 정부예산 71조4천6억원의 11.4%에 달했다.

오늘도 대기업은 물론이고 음식점이나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영업을 하는
곳이면 행정기관과 각종 사회 및 문화단체 등으로부터 이런저런 명분으로
돈을 뜯기는 것이 사실이다.

형식은 자발적이지만 실제로는 울며 겨자먹기로 할 수 없이 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북 비료보내기사업의 기금모금이 부진하자 재계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미 기탁한 20억원 외에 다시 80억원을 낸 것도 작년이다.

정부가 준조세의 폐해를 충분히 인식하고 획기적인 정비를 다짐했음에도
소소한 개선에 그쳤을 뿐 아직껏 근본적으로 손질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준조세의 문제로는 산정 및 부과기준이 불명확하고 사후 통제가 어렵다는
점도 있다.

적당히 걷어 적당히 쓴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전경련이 지난 해 과징금 사용료 부담금 등 8종의 준조세 근거법령 1백98건
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징수액이나 사용내역을 공개토록 하는 규정이 없었다.

부과하는 곳도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단이나 공사 협회 조합 등의
정부위탁기관을 비롯 다양하다.

더욱이 정치자금처럼 은밀하게 오가는 준조세는 투명한 기업경영은 물론이고
맑고 깨끗한 사회의 구현도 가로막는다.

준조세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은 수없이 제시됐다.

우선 법에 의해 강제로 징수하는 준조세는 조세로 전환하고 불필요한
준조세는 과감하게 없애는 한편 불가피한 경우 그 징수절차를 투명하게
정하고 징수액과 사용처를 공개토록 해야 한다.

감사원의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와 전경련이 건의한대로 "부담금
관리기본법"을 만들고 감사원과 시민단체, 기업이 참여하는 "특별 감사기구"
를 만들어 준조세 실태를 점검, 공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투명한 기업경영도 가능하다.

기업을 봉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결코 시장경제가 꽃을 피우기 어렵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