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선거법 87조의 개정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처음엔 여야가 모두 개정에 반대하더니 최근엔 국민회의 일각에서 개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우리는 이 조항이 국민의 참정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또 모든 국민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의 선거개입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스스로의 개혁을 기대할 수 없는 정치판의 현실을 보면 건전한 시민단체들의
공정한 정치활동이 보장돼야 한다는데 어느 누구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민단체에 선거운동이 허용될 경우 빚어질 부작용과 폐해
역시 여간 심각하지 않으리라는 점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자유당 시절의 백골단이나 땃벌떼처럼 집권여당이 조종하는 사이비
단체들, 또는 유신이나 군사독재 시절의 관변단체들이 합법적으로 선거운동에
뛰어들었을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 폐해는 아마도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지금보다 결코 작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당수의 단체들이 정부로부터 자금이나 사무실 등을 지원받는 실정에서
이들에 대한 관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그런 시민단체를
이용하거나 활용하고 싶은 유혹에서 집권당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선거 때마다 공명선거를 외친 역대 정부가 실제로는 음양으로 여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일부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해 그 공정성을 야당이 의심하는 것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선거철이면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건 사이비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리
라는 점도 예상할 수 있다.

후보가 스스로 만들어 뒤에서 조종할 가능성도 있고 한탕을 노리는 사기꾼
들이 엉터리 단체를 급조해 여러 후보들을 상대로 뒷전에서 흥정하는 일도
아주 흔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혼탁해지게 마련인 선거판이 아예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개입을
지지하는 것은 정치판이 국민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탓이다.

철저한 밥그릇 지키기로 결말난 엊그제의 선거법 협상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여야 스스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공천과정에서 후보들의 병역과 전과,
세금납부 실적, 재산상태 등을 공개해야 한다.

그렇게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특히 정치자금 모금 및 사용실적을 낱낱이 공개하고 선관위의 실사를 받아야
한다.

정치권 스스로 자정노력을 앞세우며 시민단체의 공정한 선거개입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기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