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에서 밀레니엄 베이비가 붐을 이루고 있다.

특히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서는 올해가 60년만에 한번 돌아오는
황금용 띠 해라서 말 그대로 베이비붐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아기를 꼽자면 그것은 단연 "거버 베이비"가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도 중년층 이상은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인데, 거버 베이비는 용띠
이기도 하다.

1901년 미국 미시간의 프레몽 통조림회사(Fremont Canning Company)가
전신인 거버는 우연한 계기로 회사 운명이 바뀌었다.

주인집 아들인 대니얼 거버가 1927년 딸에게 줄 이유식을 만드느라 콩 당근
등을 절구에 넣고 으깨기를 수 차례, 파편이 이리 튀고 저리 튀자 공장에서
이유식을 만들게 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주변의 평이 의외로 좋아 본격 상품화하기로 하고 아기 얼굴을 공모했는데,
확신하지 못한 화가가 대충 연필로 스케치해 보낸 거버 베이비가 또한 대
인기였다.

이렇게 시작된 거버 이유식은 1928년 출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 미국
소매사상 전례 없이 6개월만에 미국 전역에 확산됐다.

프레몽 통조림은 회사이름을 아예 거버로 바꾸고 이유식에 전념했다.

거버는 또 베이비붐이란 시운을 아주 잘 만났다.

1930년대 중반 2백50만명이 안되던 신생아 수가 40년대 초부터 급증, 60년대
초 4백40만명으로까지 늘었던 것이다.

하지만 40년간의 영광은 베이비붐이 꺼지며 날개 없는 추락세로 반전됐다.

60년대 중반 피임약 등장으로 신생아 수가 3백만명 선으로 뚝 떨어진 것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70년대엔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이혼율의 급증(10%에서 20%로)으로 출산이
한층 더 꺼려졌다.

워크맨으로 대변되는 경박단소 바람이 불었던 80년대엔 믹서기도 소형화돼
사제 이유식이 선호됐고 80년대 중반엔 다이어트가 강조되며 설탕이 듬뿍 든
일반 대량제조식품이 기피됐다.

음식의 분말화 추세로 병과 깡통 음식이 인기를 잃더니 최근엔 또 유전자
조작농산물 기피증으로 일대 고초를 겪었다.

나라마다 입맛이 다른 것도 제약요인이었다.

이렇듯 불리하기만 한 환경변화 속에서 거버는 젖꼭지 비누 화장품 장난감
그릇 등 아기용품 제조업은 물론 탁아소와 보험 등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사업으로 다각화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신생아 절대 수가 줄어 이 모든 산업부문이 총체적으로 위축되는
데는 어찌할 재간이 없었다.

물론 거버는 지금도 미국 유아식품분야에서 시장점유율 65%로 당당한 1위
기업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연간 매출이 6억~7억달러에 불과하다.

총 매출 25억달러중 75%는 다른 사업에서 나온다.

요즘 거버가 "거버 베이비"보다 누크 젖꼭지로 더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거버는 90년대 감량경영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결국 1994년 스위스 제약업체인 산도스(지금은 세계최대 제약사
노바티스)에 통째로 인수돼 일개 사업부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지 않다.

40년간의 영광과 40년간의 고초를 겪은 4천5백명 직원의 거버는 이제
"1백% 자연 그대로의 천연식품, 텐더 하비스트" 브랜드와 환자용 음식부문
에서 연간 20~30%의 성장을 이룩하며 새로운 도약 가능성에 설레고 있다.

한 백년의 전통이 주는 신뢰감, 시계같이 정확한 게르만 민족의 이미지,
그리고 세계 최고수준 연구개발력의 노바티스 제약사 후광 등을 배경으로
거버는 이제 "좋은 음식" 정도가 아니라 "보약 음식"으로써 또 한번 성공
시대를 열고자 노력하고 있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