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불썅한 조션의 녀편네며...(중략) 녀편네가 사나희보다 조곰도
나전 인생이 아닌데... (중략) 사나희들이 문명개화가 못되어 리치와 인정은
생각치 안고 다만 자기의 관심만 믿고 압제하려는 것이니, 어찌 야만에서
다름이 있으리오"

1889년 4월21일 독립신문의 논설이다.

억압과 굴종의 세월을 보내온 한국 여성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여성의 비참한 삶을 피부로 느낄수 있는 글이다.

그로부터 1백여년이 지난 2000년.

여성들의 지위는 놀랄만큼 향상됐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말은 이제 그야말로 "옛말"이 됐다.

남성들은 배우자로 일하는 여성을 찾고 있다.

집안에 머무는 여성은 싫다는 얘기다.

여성이 사회와 가정에서 떳떳하게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오히려 "매맞는 남편"이 나올 정도다.

한국 여성의 본격적인 사회참여는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부터다.

여성노동자는 물론 전문직인 여교사 여의사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60~70년대 경제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산업계에서 일하는 여성이 크게
늘었다.

여성근로자들의 조직적 운동도 이 시기에 시작됐다.

여성으로서 받는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눈을 떠야 한다는 자각이었다.

80년대부터 산업구조 변화와 더불어 여성 취업자의 고학력화와 기혼여성의
노동참여 증가가 눈에 띄게 이뤄졌다.

여성들의 직업도 다양해졌다.

크레인이나 포클레인 지게차 등 중장비를 운전하는 기사도 나타났다.

직업현장에서 성의 영역이 무너지고 있다.

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만들어지면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제도적으로만 본다면 한국의 여성인권 신장속도는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발전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미국은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한지 72년만인 1920년에야 투표권을 획득했다.

영국도 1928년에 가서야 투표권을 얻었다.

한국은 출발은 늦었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 헌법제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투표권이 인정됐다.

반면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 연방과 같은 나라는 아직도 여성에 대한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