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는 노스 캐롤라이나 주정부 재계 그리고 대학이
지역경제 발전을 목표로 추진한 계획연구단지다.

1950년대 노스 캐롤라이나의 주요 산업은 담배 석유 가구업 등이었다.

이곳에 있는 명문대학인 듀크대학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졸업생들은 졸업을
해도 받아줄만한 변변한 회사가 없어 고향을 등지고 보스턴 뉴욕 등 대도시로
떠났다.

"젊은이가 없는 도시"로 전락한 노스 캐롤라이나의 주정부 대학 기업인들은
50년대 중반이후부터 심각하게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수한 인력들이 일할수 있는 연구단지를 만들어 지역경제 발전의 엔진으로
삼자는 계획안이 그래서 나왔다.

당시 노스 캐롤라이나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였던 하워드 오덤(Howard Odum)이
이런 연구단지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이었다.

56년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정부관료 대학교수 기업인들로 리서치 트라이앵글
위원회가 구성됐다.

당초 이들이 생각했던 모델은 바로 실리콘밸리의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와 "루트128"이었다.

이들은 지역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여 당시로서는 상당히
많은 금액인 1백42만5천달러를 모았다.

그리고 이 돈으로 파크를 만들 땅을 구입하고 리서치트라이앵글연구소(RTI)
와 리처치트라이앵글재단(RTF)를 만들었다.

위치는 더램의 듀크대학과 랠리의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그리고 채플힐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잇는 삼각지대의 가운데에 만들어졌다.

이때가 59년이었다.

RTI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에 입주한 첫번째 연구소.이 연구소는 지금
1년에 억5천만달러의 연구비를 투입하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연구기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RTP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주 정부와 지역인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리적으로 외진 이곳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회사는 없었다.

이때문에 1960년대 초반까지도 RTF는 직원들의 월급을 못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65년에 IBM과 국립환경보건연구원(NIEHS)이 이곳에 입주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69년까지 모두 21개의 기업이 이곳에 들어와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이 과정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는 입주기업들에게 세금감면의 혜택을
줬다.

또 전자공학연구소와 바이오센터를 만들어 대학과 기업이 산학협력의 기틀을
다질수 있는 공동 연구프로젝트를 공급해줬다.

RTP는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내 최고의 연구단지로 자리잡았다.

IBM 노텔(Nortel), 글락소 웰컴(Glaxo Wellcome), 어메리칸 에어라인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곳을 연구거점으로 삼고있다.

기업들과 활발한 공동프로젝트를 해온 덕에 대학들의 수준도 크게
향상됐다.

1999년에 유에스 뉴스 앤 월드리포트가 조사한 전국 대학순위에서
듀크대학이 6위,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이 24위를 차지했다.

또 대학원 순위에서도 경영학 의학 엔지니어링 바이오 분야에서 RTP의
3개대학이 상위권에 올랐다.

랄리 더램 등 RTP 부근 도시지역의 실업률도 1~2%대로 완전고용에 가깝다.

대학생들을 붙잡기위한 노력으로 시작된 대학 정부 기업간의 협력체계가
RTP를 중심으로 활짝 꽃을 피우고있다.

< 김태완 기자 twkim@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