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호 < (주)코오롱 사장 jhjo@mail.kolon.co.kr >

눈 내린 어느 겨울날, 보금자리에 있던 숲속 다람쥐가 밖을 바라보며
이웃에서 놀러 온 사슴에게 말했다.

"나는 힘도 없고 몸집도 작고 능력도 없어. 이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
같아"

이 말을 들은 사슴은 안쓰런 눈빛으로 다람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눈이 올 때 세상 풍경을 보고 있었지. 우연히 어느 소나무 가지위에
쌓이는 눈의 개수를 세어보게 되었단다. 십일만오천이백서른여섯개까지는
아무 일 없었어. 그런데 십일만오천이백서른일곱개째 눈송이가 떨어지자
소나무가지가 우지끈 하고 부러지더라. 아무리 하잘 것 없는 존재라도 모두
결정적으로 쓰일 때가 있단다. 그 작은 힘 하나 하나가 모여 큰 일을 이루는
거지. 만일 마지막 눈송이 하나가 떨어지지 않고 눈이 그쳤다면 그 가지는
안 부러졌을 거야. 그러니 힘내!"

지난 한해 우리는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데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코스닥에서는 발빠르고 똑똑한 투자가들이 수십억원의 투자수익을 올렸다.

펀드 매니저가 운영하는 자금은 수천억원을 넘어섰다.

천문학적 규모의 돈들이 굴러 다니는 엄청난 현실을 목격한 것이다.

이 장면을 지켜 본 대부분의 국민은 무력감을 느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결코 엄청난 크기의 자금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생산.연구.판매현장 곳곳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에 충실하며
하나라도 아끼려는 정성어린 손길이 우리경제의 앞날을 결정한다.

이런 손길 하나 하나들이 모여 환란을 이겨냈다.

2백억달러가 넘는 무역흑자를 달성했다.

바로 이런 힘이 혼란과 격량의 세기말을 무사히 넘길 수 있게 해 준 배경이
아니었겠는가.

나 하나의 손은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작지 않다는 믿음을 굳게 가져야 한다.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반드시 보상이 뒤따르리라고
믿는다.

이제 다시 새천년을 맞아 작은 손들이 역사의 한 가운데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들에 대한 격려와 찬사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