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인 기술을 강조하는 MIT 대학에서 미디어 랩은 조금 특이한 연구소로
꼽힌다.

이곳은 당장 실용화되기 어려운 차세대 기술을 연구하는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소는 지금 인간과 컴퓨터의 사이를 좁히기 위한 휴먼인터페이스
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래서 연구과제도 미래의 영화, 입는 컴퓨터, 시청자와 방송국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쌍방향TV 등 적어도 앞으로 10년 이상 기다려야
제품으로 나올 수 있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는 세계 3백여개 기업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사기 위해
연구비를 대고 있다.

당장은 소용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매년 10만~20만달러를 낸다.

소니(SONY)와 같은 대기업들은 1백만달러 이상을 내기도 한다.

이 연구소 연구원들은 "필요한 만큼 돈을 쓴다"고 말할 정도로 돈은 넘쳐
흐른다.

돈을 내는 기업들이 이 연구소로부터 받는 유일한 혜택은 1년에 두번
연구원들과의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다.

이들이 연구한 내용에 대해 브리핑을 듣고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미디어 랩의 연구원으로 있는 윤송이씨는 "기업 관계자들이 우리 연구원과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간다"며 "컴퓨터 오락게임
업체인 세가는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로 상품을 개발했다"고 말한다.

MIT에서 당장 기업에 돈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는 수두룩하다.

이런 연구소에 대한 기업의 지원이 활발하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MIT에서 수행되는 연구의 70%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정부의 지원금이 많다.

그러면서도 MIT는 민간 부문에서 투자되는 연구 기금이 미국 대학들 가운데
1위다.

1년동안 외부에서 MIT로 들어오는 돈은 무려 4억달러가 넘는다.

이 막대한 자금과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 개발된 기술이 루트 128을
부활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루트 128에 있는 기업의 상당수는 MIT와 하버드의 교수 또는 학생이 창업한
곳이다.

MIT와 하버드가 시험을 볼 때면 루트 128에 있는 인터넷 업체들의 사무실이
텅텅 빈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

기업들은 MIT나 하버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MIT 교수들은 대부분 1~2개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보스턴 근처에 있는 벤처 캐피털에서도 이사회 임원이나 컨설턴트로
활동한다.

아예 대학에서 이같은 활동을 인정해 준다.

MIT는 교수들이 1주일에 하루는 외부 일을 볼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배려
하고 있다.

교수들은 1년에 한번씩 학교에 보고서를 올리면 된다.

MIT대학 기계공학과의 경우 60여명의 교수중 대표 이사의 명함을 가진
사람만 10여명이다.

다른 사람들은 고문이나 이사 등 별도 직함을 갖고 있다.

루트 128에 있는 트랙셀이라는 회사도 그 중의 하나다.

이 회사는 열가소성 폴리머(플라스틱)에 미세한 거품을 만들어 주는 기술을
소유한 벤처 기업이다.

MIT에서 개발된 기술을 사업화했다.

이 회사의 데이비드 피에릭 부사장은 "이곳에 있는 기업들 대부분이 MIT
에서 기술을 샀거나 부분적인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 보스턴=김태완 기자 tw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