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20세기를 떠나 보내면서 한국이 IMF를 사실상 졸업했다는 풍문을 들었다.

샴페인을 터뜨리고 싶은 정부 부처 언저리에서 나온 성급한 이야기가
아닐까.

과연 우리는 위기를 극복했는가.

사실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아직도 많은 가정들이 필요하다.

지난 세기말 혹독히 겪어야 했던 위기는 거시적으로 우리가 세계경제의
개방구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탓이었다는게 중론이다.

새 천년 경제의 새 틀을 짜면서 가장 중요한 가정의 하나로 정부혁신을
꼽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분명히 정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그것도 산업화시대에 한때 주효했던 경제의 견인차 역할은 새 천년
의 경제구조에는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새 틀을 짜는 것은 바로 경제에 관한 게임의 규칙을 확립하는 데서 출발
한다.

정부는 바로 그 게임의 심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심판이면서 동시에 경기에 깊숙이 개입해서 시장을 왜곡시켰던 과거의
간섭주의는 더 이상 발을 붙일 데가 없다.

이러한 법치경제의 패러다임을 정착시키는 것이야말로 새 천년의 경제성공
을 위해 정부가 수행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다.

교훈은 이미 오래 전에 주어졌었다.

1993년 헌법재판소는 "국제그룹해체 위헌결정"에서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은 공권력개입은 위헌이라고 단죄했다.

또 관치경제 관치금융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형성하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기업 스스로의 문제해결 능력을 마비시키고 시장경제에의 적응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갈파했었다.

만일 당시 정부가 이런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더라면 IMF 관리체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IMF 위기극복을 지상과제로 삼아 출범했던 현 정권조차도 과거 관치경제의
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그런 뜻에서 지난 세기에 성취하지 못했던 법치경제의 틀을 새 천년에 다시
구축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재벌.금융 구조조정 등 경제의 구조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는 정부에 간섭주의 경제정책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법치경제의 틀이 필요하다.

지난해 금융감독위원회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대한생명에 대한 감자명령
등 경영정상화 처분을 내렸다가 행정법원으로부터 취소판결을 받았던 사례가
바로 그 점을 웅변해 준다.

경제의 구조개혁을 위해서도 법치주의가 필요하다.

경제에 관한 정부의 역할은 축소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약화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새롭게 정립된 정부의 역할은 그 효능과 적중률 면에서 더욱 강력해
져야 한다.

작지만 현명하고 유능한 정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새 천년의 정부는 거대한 정부청사로 상징되는 조직이 아니다.

주위 환경의 변화를 기민하게 읽고 자원을 극대화해 활용할 줄 아는 기업가
형 조직이어야 한다.

또 정보의 흐름을 원활히 유도하면서 제한된 자원을 적정하게 배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능형 실천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사업성과가 객관적으로 측정.평가되고 그 결과에 따라 인력 예산 등 각종
자원이 배정되는 책임성과 합리성을 갖춘 전략조직이 필요하다.

격랑을 헤쳐 나가기 위해 요구되는 또 하나의 가정은 "정부가 인간의 얼굴을
갖춘다면" 하는 것이다.

새 천년의 변화된 환경에서는 결국 극소수만이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극한경쟁의 폐해는 자칫 새로운 경제의 틀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극한경쟁으로 인한 사회적 균열을 메워 줄 통합의 시멘트가 필요하다.

이러한 통합요인으로서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구현하는 창구이자 컨베이어
벨트가 되어야 한다.

새 천년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정부가 문제다.

언제 또 다시 우리를 뒤덮을지도 모르는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과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부를 가질 수 있을까.

정부는 어떤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그렇지만 이런 물음들은 그리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왜일까.

우리가 아직도 이런 문제들을 속시원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수한 처방이 제시되었으나 효험이 없었다.

정부혁신은 정권교체기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던 단골메뉴였다.

그러나 1948년 정부수립 이후 근 50차례에 걸쳐 정부조직개편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정부개혁의 철학과 비전을 결여한채 단순히 정부기구를 축소하고 인원감축
의 비애를 남기면서 집행조직을 정비하는 것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결국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추진하다 조직과 공무원 수가 오히려 늘어나고
행정의 효율성이 후퇴하는 결과를 낳기 일쑤였다.

민간부문은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정부도 무언가 감량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는가 라는 어설픈 고통분담의 철학으로 조직을 이리 저리 통폐합하고
인원감축 등 수선을 떨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귀결이었다.

정작 정부혁신의 목표였던 정부의 역할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3일 발표된 대통령 신년사에서도 정부조직 개편구상이 포함됐다.

재경부.교육부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킨다고 한다.

취지야 그럴듯하지만 "큰 정부"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될까 걱정스럽다.

관료들의 제스처만 변했을 뿐이다.

이제 새 천년을 맞이해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발음해야 한다.

새 천년의 변화된 환경에서 요구되는 정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고
그에 따라 조직과 임무수행 방식을 바꾸는 진정한 의미의 정부혁신이 필요
하다.

< joonh@sn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