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작가로도 유명한 물리학자 아이작 아시모프의 공상과학소설 ''환상의 항해
(A Fantastic Voyage)''는 매우 황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뇌 장애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의 몸속에 초미니 잠수함을 투입, 이 잠수함이
혈관을 타고 뇌 속으로 들어가 레이저로 환부를 치료하고 환자가 흘리는
눈물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는 얘기다.

이 소설은 ''이너 스페이스(InnerSpace)''란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공상소설이나 영화속의 일들이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4월 과학자들은 혈관 속에서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는 초소형 로봇을
개발했다.

독일 일메나우공대 연구팀이 완전하게 작동하는 성냥개비 절반 크기의
"마이크로 인공벌레"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인공벌레에는 카메라와 초미니 송곳 등 의료장비를 탑재할 수 있다.

혈관을 구석구석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혈관벽에 달라붙은 지방분도 제거할
수 있다.

원격조종을 이용한 치료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이같은 초소형 벌레로봇의 출현을 마이크로 머신 연구가
진행된 이래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마이크로 머신이란 크기가 수 마이크로미터(1미크론m는 1백만분의 1m)
에서부터 수 밀리미터(mm)에 이르는 초소형 구조물이나 소자 등을 말한다.

이같은 마이크로 머신을 만드는데는 반도체공정기술과 기계적인 가공기술이
요구된다.

마이크로 머신은 아주 좁은 공간에서 미세하고 복잡한 작업을 하는데
사용된다.

소형이면서 고도의 정밀도가 필요한 각종 정보통신 기기나 정밀기기,
미세수술, 인공장기, 진단및 치료용 의료시스템 등에 특히 널리 이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가운데 마이크로 머신의 활용이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의료분야다.

혈관속을 돌아다니며 종양 부위에 투약하는 초소형 기계나 막힌 동맥을
넓혀 주는 지능형 알약(마이크로 캡슐) 개발이 대표적인 예다.

마이크로 머신 기술은 의료뿐 아니라 정밀기계 광학 정보통신 농업 등 많은
분야에 폭넓게 응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계 과학자들은 "초소형 정밀기계기술(MEMS)"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초소형 기계 개발에 힘쓰고 있다.

정보통신및 정밀기기 분야에서는 컴퓨터의 기억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차세대 DNA칩, 광통신용 마이크로 커넥터 장비, 반도체의 실리콘 웨이퍼
표면을 가공하는 에칭기술 등에 마이크로 머신이 이용된다.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16~17미크론m의 초소형 거울을 1백만개 정도
탑재한 초소형 칩을 만들어냈다.

이들 거울 하나하나를 비스듬히 기울이거나 바로놓아 수많은 빛을 화면에
뿌려줄 수 있다.

이밖에 항공기및 자동차 등에 쓰이는 마이크로 센서, 원자력발전소에서
구경 10mm 이하의 미세관을 이동하면서 이상 유무를 감지해 위치를 알려주는
마이크로 캡슐 등도 있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 머신 기술이 21세기 초에 상용화돼 기존의 기술체계를
뒤바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마이크로 머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간 수억달러씩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국내에서도 선도기술개발과제(G7 프로젝트)의 하나로 초소형정밀기계기술
개발 연구를 진행중이다.

마이크로 머신 개발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크기를 소형화시키는 것이다.

현재 일반적인 정밀부품의 크기는 대개 mm 단위다.

이것을 혈관처럼 가늘고 좁은 장소에 넣으려면 미크론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반도체 미세가공기술과 방전가공기술을 응용하면 단순한 부품의 경우 몇
미크론대로 줄일 수 있지만 구조가 복잡한 부품은 아직 만들기 쉽지 않다.

작게 만드는 기술과 함께 조립 기술도 필요한다.

현재 마이크로 머신 기술은 미국과 일본이 선두를 다투고 있다.

미국이 주로 실리콘을 이용해 센서 등을 집적화시키는 쪽에 주안점을 두는데
비해 일본은 금속재료를 사용한 초소형 기계가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MEMS 기술이 소개되면서 본격 연구가
시작됐다.

그동안 구경 0.5cm 크기의 마이크로 내시경과 자동차용 압력및 가속도 센서,
잉크젯 프린터용 헤드 등을 개발했다.

< 송대섭 기자 dssong@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