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한국전력연구원 에너지환경연구소는 흥미로운 기술 한 가지를
발표했다.

''팽이채로 단 한번만 치면 멈추지 않고 영원히 도는 팽이''였다.

어떻게 이같은 팽이가 가능할까.

이런 마술 뒤에는 첨단과학의 하나로 꼽히는 초전도 기술이 숨어있다.

''플라이휠''이라 불리는 이 팽이 중심을 영구자석으로 만든 길다란 회전축이
관통하고 있다.

이 축은 원통 모양의 초전도자석 안에 들어가 회전한다.

원통 자석은 강력한 자력으로 회전축을 아래에서 위로 밀어올리고 동시에
위에서 잡아당긴다.

회전축은 원통 속에서 언제나 몇mm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전혀 마찰없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회전축에 연결된 팽이를 모터로 회전시키면 팽이는 관성에
의해 영원히 돌게 된다.

당시 이 기술개발에 참여한 성태현 박사는 "이 팽이를 영원히 돌릴 수 있는
핵심 기술은 바로 고온 초전도체"라고 설명했다.

고온 초전도체는 21세기 "신기술 혁명"을 이끌 핵심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자 통신 항공 등 첨단산업에 광범위하게 적용돼 전선 굵기를
1천분의1로 줄이고 열차의 주행속도를 비행기 수준으로 높이는 등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보고 있다.

초전도 상태에서는 전기저항이 제로가 돼 무한대로 에너지를 보내거나
저장할 수 있고 초강력전자석도 만들 수 있다.

초전도 현상은 절대온도 4도(영하 섭씨 2백69도)인 액체 헬륨에 담근
수은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극저온의 액체 헬륨은 만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격도 비싸
실용화가 힘들었다.

제자리걸음을 하던 초전도 응용기술은 1986년 절대온도 77도(영하 섭씨
1백96도)에서 초전도현상을 보이는 산화물 세라믹을 만들어 내면서 빠르게
발전하게 됐다.

이에따라 초전도성 재료를 만들기 위한 냉각매체를 비싼 헬륨 대신 값싸고
공기중에 풍부한 질소를 냉매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영하 2백69도까지 낮추기 위해 헬륨을 사용하던 저온 초전도와 비교해
고온 초전도라고 한다.

고온 초전도란 보통의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절대온도 4도보다 높은
온도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표현이다.

고온 초전도체는 값싼 액체 질소를 냉매로 사용, 저온 초전도에 비해
경제성이 5천배 이상 높은 것으로 추산된다.

고온 초전도 재료가 본격적으로 실용화되면 인간의 생활양식은 송두리째
바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석유 등 화력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공해나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방사능 위험에서 상당부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초전도체를 이용한 대형 축전시설을 만들어 많은 양의 전기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전기사용량이 가장 많은 여름성수기에 맞춰 발전설비를
갖출 필요가 없어진다.

소형 발전시설로 야간이나 겨울철에 미리 전기를 저장해 두면 된다.

전력손실도 막을 수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굵은 송전 케이블을 통해 도시 등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막대한 양의 전력손실을 우려할 필요가 없어진다.

때에 따라서는 여름철에 전기값이 아주 싼 캐나다 등으로부터 초전도
케이블로 한국까지 전력을 끌어다 쓸 수도 있다.

초고속이면서 소음이 없는 교통수단도 등장하게 된다.

초전도 전자석을 이용한 시속 5백km 이상의 자기부상열차가 개발되고
선박에도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추진장치를 설치해 스크루 없이 조용하게
달릴 수 있다.

작으면서 전력소비가 적은 모터를 만들수 있어 한번 연료를 넣고 1개월
이상 주행하는 자동차도 나올 수 있다.

컴퓨터는 반도체 소자대신 상온 초전도 소자를 쓸 경우 처리속도가 지금의
수백배 이상 빨라지고 크기 또한 초소형화된다.

슈퍼 컴퓨터를 소형 PC 크기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고온 초전도체 기술은 미국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선진국간 초전도 기술개발 경쟁이 불붙으면서 지금은 영하 섭씨
1백33도의 고온에서 초전도물질을 합성해내는 기술 수준에까지 와있다.

현재 상온에서 물체를 얼리지 않고도 초전도성을 띠는 재료를 만들어내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일본은 상온 초전도체 개발에 부분적으로 성공한 상태다.

이미 초전도 기술을 이용한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렙스(REPS)"라 이름붙여진 전력저장장치가 대표적이다.

이 장치는 태양광을 이용하며 전력 손실이 없어 한번만 전력을 저장한 뒤
추가로 충전할 팔요가 없다.

일본은 이 장치로 초전도 전기자동차를 만들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초전도기술 실용화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개발중인 분야는 고온초전도 양자간섭장치(SQUID)를 비롯 고온초전도
전선, 고온초전도 마이크로파 필터, 고온초전도 디지털 소자 등이다.

고온 초전도체 관련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오는 2010년께 6백억~9백억달러,
2020년에는 1천5백억~2천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한한 우주에너지를 인간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꿈의 소재" 고온 초전도체.

20세기 산업의 꽃인 반도체의 바통을 이어받을 21세기 산업의 핵심기술이라
는데 이론이 없다.

< 정종태 기자 jtchun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