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휘창 <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


선진경제란 무엇인가.

단순히 소득수준만 높으면 되는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두루두루 높은 수준을 이룬 경제체제를
일컫는다.

선진경제의 틀을 짜기 위해서는 선진경제와 후진경제의 차이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후진성을 찾아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이 선진경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첫째, 문을 더욱 활짝 열어야 한다.

우리는 말로는 세계화를 주장하면서도 행동은 "우물안 개구리"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오래 기자생활을 했던 어떤 외국인의 말을 인용하면 "한국은 마치
폐쇄된 상점과도 같아서 나는 영원히 손님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이러한 폐쇄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 시대에 가장 앞서간다고 하는 미국의 경쟁력 원천은 개방성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에서 개방과 상호존중이 없었다면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국제적 차원의 개방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 지역간 개방도
매우 미약한 상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수출 위주의 개방정책만 펴왔을 뿐 수입이나 해외 투자,
외국인 투자 등에 대해선 폐쇄적이었다.

어떤 이는 "한국이 겪은 최근의 경제위기는 우리가 개방을 너무 빨리 추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다른 부문에선 전혀 개방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단기 금융시장만 열었으니
탈이 난 것이다.

단기 금융시장보다는 외국인투자 시장이, 그리고 이에 앞서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이 먼저 개방됐어야 했다.

결국 개방의 순서가 문제였던 것이다.

순서를 잘 모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럴 때는 무조건 개방하는 것이다.

즉 최선책은 적절한 순서에 따른 개방이지만 이것이 힘들다면 차선책은
무조건 개방이다.

쇄국은 가장 피해야 할 대상이다.

사실 우리가 겪은 지난 몇 년간의 경제적 어려움은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니다.

비싼 값을 치른 대신 그만큼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둘째, 일을 정확히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고는 일을 정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경우가 많다.

불량품이 나오는 것은 제조과정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패가 만연하는 것도 인간관계 또는 사업상의 관계가 정확하지 않아서다.

선진 경제체제에서는 일처리를 똑바로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부실공사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불량품 발생확률은 미미하다.

부정부패는 언젠가는 폭로되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천연자원이 거의 없고 인력자원 또한 변변치 못했던 싱가포르가 짧은
기간에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바로 적극적인 대외 개방과 더불어 정확성과 투명성이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흔히 한국경제의 미래를 얘기할 때 기술 집약적인 산업구조로 전환할 것을
역설하며 연구개발(R&D) 투자를 강조한다.

그러나 정확히 일을 하는 연구풍토가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선 아무리 연구
개발 투자를 늘려도 기대 만큼의 성과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

여기서 한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버리기보다는
정확성이 수반되는 "빨리빨리"로 탈바꿈시키자는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조금 더 빨리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개인주의 경제체제로 가야 한다.

개인주의는 자기만을 아는 이기주의가 아니다.

개인의 역할과 책임이 확실히 정해지고 성과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는
체제다.

집단주의 체제 아래서는 집단 전체의 역할은 정해지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책임은 명확하지 않다.

또 개개인의 성과에 대한 보상도 적절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집단주의 체제 아래에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정을 저질러 보상을 높이려 할 것이다.

아니면 보상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게을러지기 쉽다.

선진경제는 개인주의를 경제체제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평등하지 않은 것은 평등하지 않게 대하는 것이다.

이런 체제에선 보수제도도 연공서열에 의한 호봉제가 아닌 능력에 의한
연봉제를 따른다.

빨리빨리 문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집단주의 체제도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선 매우 유용하다.

개인이 조금 희생하더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또 우리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다 같이 나가자는 등의 구호는 경제 발전초기에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선진경제에서는 이러한 것이 안 통한다.

선진 경제에선 개인의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준다.

동시에 능력과 성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해준다.

결론적으로 선진경제가 되기 위해선 이상의 세가지, 즉 개방, 정확성,
개인이 동시에 강조되는 틀을 짜야 한다.

물론 이는 무척 단순하고 다 아는 내용 같지만 사회전반에 걸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틀의 바탕 위에 각 경제 주체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역사상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해온 우리가 또 다시 세계적으로
커다란 변화의 물결에 직면해 있다.

이 흐름에 현명하게 대응한다면 21세기에는, 아니 바로 지금 우리 세대에
우리도 선진경제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hcmoon@gias.sn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