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벌이부부의 하루 ]


"어! 향기가 다르네..."

한 대리는 아내의 얼굴과 침대맡의 자동 향기조절장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제 아침까지 "방향커튼"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자스민향이 라일락향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방안의 채광도 달라졌다.

아직 6시도 안 됐는데 싱그러운 햇살이 방안에 가득하다.

클린에어사의 햇빛공급 서비스가 업그레이드된 모양이다.

"에코홈이에요"

아내는 아침잠이 많은 그를 위해 새 프로그램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2020년부터 유행한 환경주택 붐이 이제는 에코홈(생태가정)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자연과 첨단과학의 장점만 모은 신개념 주거공간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흘러 나오자 그는 팔목의
헬스밴드를 풀어놓고 일어났다.

헬스밴드는 간밤의 수면상태나 신체변화를 체크하고 건강지수를 알려준다.

여러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홈닥터시스템보다 한 단계 발전된 것이다.

간밤에 사이버 클럽에서 과음한 게 다소 걸리긴 했지만 "컨디션 최상"이라는
표시가 깜박이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는 청정야채와 무공해 과일로 만든 클린푸드를 즐기면서 아내와 함께
스크린신문을 본다.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리얼타임 뉴스가 요약돼 나온다.

우주인 모습의 뉴런칩 로봇이 커피를 갖다 준다.

그새 아내는 거실의 멀티스테이션 앞에 앉아 있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프리타임으로 일하는 "e-랜서"다.

지난해 컨벤션 디자이너 일을 시작한 뒤부터 아침마다 화상전화를 붙들고
산다.

싱가포르 금융센터 임원으로부터 서울국제회의 일정협의 요청이 들어와
있다.

출근 부담이 없는 아내는 대부분의 일을 아침에 끝낸다.

저녁에는 메시지만 확인하면 된다.

아들이 컴캡을 들고 눈을 부비며 나왔다.

컴캡은 요즘 인기 절정인 지능로봇 캐릭터다.

녀석은 그걸 한시도 놓지 않는다.

사이버유치원에서도 그 얘기만 나오면 난리다.

내일은 스타캠프에 가기로 했다.

별자리를 따라 우주여행을 즐기는 코스다.

녀석은 컴캡과 함께 우주복에 멀티장갑을 끼고 환호성을 질러댈 것이다.

한 대리는 컴퓨터로 아이의 투어트랙을 프로그래밍한 다음 자신의 비즈니스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는 세계적인 전자상거래업체 "트레이딩닷컴" 직원이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

대서양의 수중도시 자기부상열차용 레일 거래를 성사시킨다.

모레는 지하 2백m에 조성된 신도시의 공기청정시스템 관련 견적을 보내야
한다.

뉴욕의 구매담당 팀장에게 최종 협상안을 만들어 전송한다.

오늘 저녁 유럽과 아프리카 지점을 연결하는 원격회의에 대비해 그는 본사의
마케팅보고서를 띄워놓고 핵심 사항을 점검한다.

메시지 자동 수신장치를 작동시킨 뒤 느긋하게 점심을 먹는다.

아내는 휴가용품을 미리 사두자며 그를 사이버쇼핑몰로 이끈다.

3차원 가상 몰에서는 디스플레이장치와 특수장갑, 센서를 활용해 색상이나
촉감 소리를 실물처럼 확인할 수 있다.

터치스크린 하나로 맞춤쇼핑까지 가능하다.

이들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투탕카멘 문양을 닮은 디자인으로 야외복을
주문한 뒤 들고 다니기 번거로운 물건은 빈탄 휴양지로 보내달라고 했다.

아내는 테크노시티를 벗어나 자연속에서 지내는 걸 무척 좋아한다.

내년엔 사하라 사막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아내가 명상센터에 다녀오는 동안 한 대리는 그린말차(가루녹차)를 마시면서
컴퓨터로 프랑크푸르트 쇼비즈니스룸을 불렀다.

저녁 때 돌아온 아내가 메일박스를 체크하다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 이것 좀 봐요. 2천억짜리 프로젝트예요..."

한 대리는 능청스럽게 콧노래만 부르고 있다.

아내의 워크홈에 e비즈 네트워크를 자동으로 연결해둔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무역정보를 탐색하던 중 유럽의 최신 사이트를 발견하고 아내 몰래 링크해둔
게 횡재를 안겨주다니.

글로벌 비즈니스 시대에는 부부사이에도 법인처럼 "기업간 협력"이
이뤄진다.

한 대리는 그날 밤 평생 잊지 못할 "인센티브"를 아내로부터 받았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