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명대사 (1544~1610) =조선 중기의 고승.

본명은 유정.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15세에 김천 직지사로 출가해 신묵의 제자가 됐다.

21세때 묘향산 보현사의 휴정을 찾아가 선의 이치를 탐구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병을 모아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방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팔공산성 금오산성 등을 쌓았다.

"사명당대사집" "분충서난록" 등의 저서가 있다.


<> 장 자크 루소 (1712~1778) =프랑스의 사상가 소설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1749년 "학술과 예술론"을 출판해 사상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인간불평등 기원론" "정치경제론" "고백론" 등을 썼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자연상태에서 파악, 당시 사회나 문화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죽은지 11년 후인 1789년 전제왕정의 종말을 고하는 역사적인 프랑스
혁명이 발생했다.

그의 계몽주의 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바탕이 됐다.


<> 이하응 (1820~1898) =조선 제26대왕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안동김씨의 세도 때문에 불우한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왕권을 공고히 다지고 외세에 대적할 힘을 키우기 위한 혁신정책을
과감히 추진했다.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 법질서를 확립하는데도 공헌했다.

서화에도 능했으며 특히 난초를 잘 그렸다.


<> 나이팅게일 (1820~1910) =영국 상류계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병원과 의료제도의 개혁자로 불린다.

1854년 크림전쟁의 참상을 보고 30여명의 자원 간호사들과 터키의
스쿠타리로 가 야전병원을 열었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부상병을 간호해 "크림의 천사"로
불렸다.

귀국후 간호사학교를 세우고 간호법 개혁과 위생사상 보급에 힘써 적십자의
기초를 닦았다.

저서로 "병원에 관한 노트"가 있다.


<> 신채호 (1880~1936) =언행일치와 지행합일을 실천한 독립운동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해 20세때는 성균관의
박사가 됐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 비판적인 논설을
썼다.

한일합방이 이뤄진 1910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상하이와 베이징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하면서 역사연구에 매진했다.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론" 등을 저술했다.


<> 이광수 (1892~?) =시인 소설가 평론가 언론인.

호는 춘원.

평안북도 정주 출생.

5세에 천자문을 깨우칠 정도로 명석했다고 한다.

홍명희 문일평 등과 함께 소년회를 조직, "소년"을 발행하면서 시 소설
문학론 논설 등을 쓰기 시작했다.

1910년 언문일치의 새 문장으로 된 단편 "무정"을 발표했다.

6.25중 공산군에 납치됐다.

한국근대문학사에서 그는 계몽주의 민족주의 인도주의 작가로 불린다.


<> 이중섭 (1916~1956) =서양화가.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당시 미술교사였던 임용련의 지도를 받으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들어갔다.

재학중 독립전과 자유전에 출품해 신인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그가 추구했던 작품의 소재는 소 닭 어린이 가족들이다.

불상 풍경도 몇점 남겼다.

40세때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떴다.


<> 주룽지 (1928~ )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잃은 그는 창사시내 좌익서점을 드나들며 뤼신, 바진, 마오둔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

1947년 칭화대 전기공정과에 입학해 곧바로 지하 공산당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졸업후 동북인민정부 공업부생산계획실 부주임으로 관료생활을 시작,
1987년 상하이시장으로 발탁된뒤 1991년 부총리에 취임했다.

장쩌민 리펑에 이어 중국내 권력서열 3위다.


<> 노암 촘스키 (1928~ ) =언어학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 2세로 태어났다.

29세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부교수, 30세 정교수, 37세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언어학 정치학 철학 인지과학 심리학 등 많은 분야에서 70여권의 저서와
1천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1966년 뉴욕타임스에 비판적 글을 기고, 미국 주요 언론으로부터 기피인물로
낙인찍혔다.

지금도 다양한 저술을 통해 쓴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 존 레넌 (1940~1980)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의 멤버.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때 폴 메카트니와 함께 처음으로 그룹을 결성했다.

이후 비틀스로 이름을 바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62년 첫번째 아내인 신시아와 결혼, 아들 줄리안을 낳았다.

1969년 오노 요코와 재혼했다.

줄리안 레넌도 현재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 12월8일 뉴욕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암살당했다.

< 강동균 기자 kdg@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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