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은 경진년 "용띠 해"다.

60간지로는 17번째이며 방향은 동쪽이다.

진은 시간으로 보면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에 해당한다.

우리 겨레와 가장 친근한 동물인 용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문화적 동물이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지만 한국 민속을 살펴보면 뱀이 구렁이를 거쳐
여의주를 얻어 하늘로 올라가면 용이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땅을 기어다니는 미물인 뱀이 비약의 과정을 거쳐 용이라는 성스러운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용은 머리에 사슴같은 뿔이 있고 몸통은 뱀과 같으며 날카로운 발톱을
지녔다.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어 사람이 여기에 닿으면 죽는다고 한다.

용은 특히 제비고기를 좋아하고 쇠 지네 오색실을 매우 싫어한다고 사람들은
믿어 왔다.

용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암컷과 수컷이 있으며 알을 낳는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또 용이 크고 작고 어둡고 밝은 대소명암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변신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예부터 동.서양에서는 용에 얽힌 얘기가 많이 전해오고 있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에서는 용을 인간에게 유익하고 신성한
동물로서 임금의 위엄이나 위인의 탄생과 결부시켜 왔다.

황제의 예복인 곤룡포에 용을 수놓았고 왕이 앉는 자리를 용상, 왕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한 것이 그러한 예다.

용은 또 바다 강 비를 지배하는 동물로 여겨져 고기잡이를 나갈 때 바다가
잔잔하기를 비는 용왕제를 지낸다.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도 용을 대상으로 지낸다.

용은 신라 고려 조선 등 역대 왕조의 개국 수호신으로 숭상받아 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왕후는 계룡의 딸이었다.

그녀는 용의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박혁거세 60년(기원 후 3년) 9월에는 "두 용이 금성(경주)의 우물 안에서
나타났는데 우레가 울고 폭우가 쏟아지며 궁성의 남문이 진동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신라 30대 문무왕은 생전에 "내가 죽은 후에 호국용이 되어 불교의 진리를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유언에 따라 문무왕의 시신은 바다에 장사지냈다.

신라 성덕왕 때는 강릉 태수로 부임해가는 순정공의 아내인 절세미인
수로부인을 용이 바다로 납치해 갔다.

그 부인을 다시 찾은 것은 "쇠도 녹인다"는 여러 사람의 노래였다.

민중의 정당한 여론이 용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이다.

고려의 건국설화에는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 용을 괴롭히는 요귀를
퇴치하고 용의 딸과 혼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의 개국을 노래한 "용비어천가"는 그 첫 구절이 "해동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이시니..."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육룡이란 태조 이성계와 그들의
네 선조를 가리킨다.

신라 고려 조선의 개국시조가 모두 성스러운 용의 화신으로 묘사되어 신령한
동물인 용이 나라를 보호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각종 문헌에 나타난 용은 신라때 12회 출현 13마리, 백제 5회 6마리, 고구려
1마리, 고려 3마리, 조선조 5회 10마리 등이다.

이들 용 가운데는 황룡 백룡 흑룡 등이 있다.

용이 출현한 곳은 주로 못 궁성안 산마루 폭포 우물 등으로 묘사돼 있다.

한국의 지명에도 용은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인명에서도 다른 동물은 거의 쓰이지 않는 반면 용은 돌림자로 자주 쓰인다.

배의 이름에도 용이 등장하고 있다.

또 중국 사람은 용을 합리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한 데 비해 우리 조상들은
주관과 상상력을 동원해 다양하게 표현했다.

고려의 용 그림은 윗입술이 코를 막으면서 위로 치켜올라가 있다.

수염은 코에서 두 가닥 앞으로 뻗어 있는데 조선시대에 이르면 윗입술은
없어지고 갈기가 앞으로 뻗치는 등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 강동균 기자 kd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