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97년말 경제위기 이후 기업들은 해외 진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해외 사업은커녕 살아남는게 최우선 경영목표였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웬만큼 마무리한 지금 "탈국경 시대"에 대응한 글로벌
경영체제 마련이 기업 경영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기업들의 탈국경 전략은 그러나 20세기와는 여러 점에서 다르다.

1980~90년대에 걸친 경험에서 기업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첫째는 핵심사업 위주의 진출이다.

과거엔 국내에서 경쟁력이 약화된 품목이나 사업을 좀더 경제가 낙후된
나라로 이전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하지만 탈국경 시대엔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커나가기 위해 핵심사업
중심으로 해외에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이를 "국내에서 안되는 품목은
해외에서도 안된다는게 그간의 해외 진출 경험이 가르쳐준 교훈"이라며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해외진출도 경쟁력있는 품목과 사업 중심이 돼야
한다"고 표현했다.

또 하나는 진출 방식이다.

과거엔 해외로 직접 나가 공장이나 법인을 세우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해외 선진업체와 지분투자를 포함한 파트너십 체결, 해외 지주회사
설립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특히 국내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국경을 넘어서 해외 일류업체와
동등한 자격으로 첨단제품 및 기술을 공동개발하거나 마케팅을 벌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 국내에 있든 해외에 있든 각사별 독립경영체제 구축이 최대경영목표
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엔 해외 공장이나 법인이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한국 본사가
지원해줬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탈국경 시대엔 스스로 자립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삼성은 주력 사업인 전자와 금융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기 위한
대책을 마련중이다.

이미 여러 해외기업과도 손을 잡았다.

삼성전자는 세계최대 반도체업체인 미 인텔과 차세대 고속메모리인
램버스D램 생산을 위해 협력하고 있으며 컴팩컴퓨터와는 고속 CPU
(중앙연산처리장치)인 알파칩 공동개발및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램버스나 DDR(더블 데이터 레이트)D램을 이을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최근 미국 인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일본 NEC 히타치, 독일
인피니온 등과 협력관계를 맺었다.

삼성은 해외 생산거점도 육성,반도체 브라운관 LCD(액정표시장치) 브라운관
및 LCD용 정밀유리 등의 분야에서 해외 현지공장을 확대해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

금융분야에선 2000년 세계 1백대 금융기관에 진입한다는 목표로 해외금융
기관과 제휴를 추진중이다.

현대는 주력업종인 자동차 부문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상용차 부문에서 일 미쓰비시자동차, 스웨덴 볼보와 전략적
제휴계약 체결을 검토중이다.

미 포드와는 대우자동차 인수를 위해 협력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는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대우자동차 폴란드 공장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전자는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분야에서 해외업체 출자를 포함한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LG는 전자와 화학 분야에서 해외 진출을 늘리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자회사인 미 제니스를 활용, 디지털TV 시장 선점을 위한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LG화학은 영국 스미스클라인 비첨, 미 워너램버트와 텍사스 바이오텍
콥사 등 세계적 제약업체와 신약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중이다.

SK는 중국 사업에 사운을 걸었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중국지역에 그룹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종전의 일방적 투자위주에서 탈피,중국화된 기업을 창출하고 제3국과의
공동진출도 모색할 방침이다.

중국 현지 법인 사장에 중국인을 임명하고 사명도 굳이 SK를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SK는 중국내에 지주회사를 설립,중국 사업을 통괄 관리할 계획이다.

< 강현철 기자 hckan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