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 중앙대교수.한국경제학회장 >


새 천년이 열렸다.

새 천년이 갖는 역사적인 큰 의미는 어디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사는 "판"이 바뀐다는데 있다.

판이 바뀐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생존환경이 바뀐다는 뜻이다.

그 바뀜은 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그러한 것이다.

우리 인류는 1만여년 전에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의 변화를 경험한 바
있다.

그때 비로소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뒤 지금부터 2백40여년 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판이 바뀌었다.

그런데 지금 판이 다시 바뀌고 있고 이에 따라 경제운영의 패러다임도
바꾸어야 할 전환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 변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첫째, 국제환경이 보호시대에서 완전개방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새천년 시대에는 상품과 자본뿐 아니라 사람까지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완전개방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60억 인구는 한 가족이 되고 이 지구는 한 마을이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그 하나는 사람과 지역은 차별해서 안되고 모든 것은 능력경쟁으로 판가름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결판내는 경쟁력은 비교우위가
아니라 절대우위라는 것이다.

둘째, 기술의 판이 주판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바뀌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정보가 현지의 실시간으로 모든 지역에 전달된다.

바야흐로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숙원이 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생산은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가지의 유형적 생산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는 지금까지의 생산이론은 지식이라는 무형적 단일요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된다.

유형재는 쓸수록 없어지지만 지식은 쓸수록 쌓여지므로 생산에서 수확이
체감하는 것이 아니라 체증한다.

생산의 결정요소는 경험과 숙련이 아니라 창의와 속도다.

셋째, 경제는 고수익 고성장 시대에서 저수익 저성장 시대로 넘어간다.

노동과 자본의 투입증대를 통한 양 주도의 성장시대는 지나고 이제 노동의
생산성향상을 통한 질의 성장에만 매달려야 한다.

노령화현상은 본격적으로 나타나서 사회보장부담을 크게 하고 사람들은
되도록 일은 덜 하고 향락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확산된다.

이 갈등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끝으로 국민생활은 의식주문제를 중심으로 한 양의 시대에서 환경 교육
의료 교통 사회보장 휴식공간 등과 같은 사회공공재를 중심으로 하는 질의
시대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두 가지 큰 문제가 생긴다.

그 하나는 의식주 문제는 경제만 성장하면 해결될 수 있지만 삶의 질 문제는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경제가 성장할수록 오히려 나빠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의식주문제는 개인재산으로 개개인이 해결할 수 있지만 사회
공공재 문제는 개인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사회재산축적을 통해서
공동체적으로 노력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경제의 판이 바뀌는 상황에서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

먼저 경제운용에 있어서 가치관부터 바꿔야 한다.

혈연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인 연고주의 가치관은 오늘의 세계화시대에
경쟁력을 창출할 수 없다.

그러한 배타적 차별적 폐쇄적 가치관은 보호주의 민족주의 시대의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경제운용의 목표도 바꿔야 한다.

경제성장은 의식선진화와 사회적 도덕성의 틀 속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개인저축과 개인재산보다도 사회저축과 사회재산을 더 쌓고 아끼는 방향
으로 경제의 틀이 잡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회공동체적 연대의식이 경제운용의 중심가치가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절대우위의 경쟁력을 모든 부문에서 확보하는 일이다.

상대우위의 경쟁력이나 특정부문만의 경쟁력으로는 일류국이 될 수 없다.

모든 산업, 모든 기업, 모든 조직, 모든 사람이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이 나라를 그렇게 만들려면 끊임없는 개혁과 구조조정을 밀고가야 한다.

여기서 오는 "창조적 파괴"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경제주체들이 목표를 추구하는 방법도 바꿔야 한다.

기업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그것을 세습한다는 천민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자는 대립과 투쟁을 통해서 권익을 쟁취한다는 저임금 실업시대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소득증대나 임금인상보다도 욕구자제와 낭비제거를 통해서
생활만족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저수익 저성장시대에 시민들이 가져야 할 슬기다.

< ps0216@netsgo.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