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의 첫 아침이 밝아 왔다.

"일년지계는 원단에 있다"는 말이 있지만 금년은 물론이고 백년(21세기)과
천년(2000년대)의 앞일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우리를 누른다.

경진년 한해만 해도 우리가 맞닥뜨려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다가오는 총선이 그러하고 이미 술렁대기 시작한 노동계의 움직임 또한
그러하다.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마무리짓는 일이며
늘어난 재정적자와 물가압력을 다스려 나가는 일도 벅찬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개방경제하에서 금리와 환율의 상충되는 움직임을 조율해 나가는 것도
정책당국으로서는 골칫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천년만에 한번 돌아오는 오늘 같은 날에는 당면과제에 매달리기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조상들의 족적과 우리의 경험을 되새겨 보며 앞으로
나아가야할 장기적인 방향을 짚어보는 것이 의의깊은 일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과거 1천년은 우리에게 있어 고난과 수모의 역사였다.

이는 서양국가들의 힘과 문명이 융성해 온데 반해 아시아 각국의 국력과
문명은 정체와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는 대세에 기인하는 바 크다.

괴로움과 부끄러움의 역사는 20세기에 들어오면 절정에 달하게 된다.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된 세기였기에 어느나라 국민이건 편안한 날이
없었겠지만 우리가 겪은 고초는 이들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한일합방으로 나라잃은 설움을 맛보았는가 하면 남의 힘에 의해 해방된
탓에 국토는 양분되었고 마침내는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르게 되었던
것이다.

전후 복구가 끝나고나서부터는 개발독재체제가 시작되었다.

자유가 제한되는 대가로 경제성장은 빨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졸속의 외형위주 성장전략은 많은 구조적 문제점을 야기하였고
그것들이 누적되어 마침내 외환위기를 초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기업과 국민들이 30년이상 쌓아온 공든탑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고 거리는
다시 실업자와 노숙자들로 넘쳐 흐르게 되었다.

이와같은 우리 역사회고를 바탕으로 우리가 새세기에,그리고 새천년에
이루고자 소망하는 바를 골라내라면 그것은 평화 자유 풍요의 세단어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평범한 개념들이긴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볼수록 우리의 몸에 와닿는 염원들인 것이다.

이러한 소망을 이루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다각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는데, 특히 경제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크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정책당국이 유념해야할 세부 사항들을 점검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먼저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성취하는 것이 긴요하다.

통일 자체가 우리의 중기적인 숙원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역시
평화로 가는 한 수순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필요한 재원과 통일후에 소요되는 비용이 엄청나긴
하겠지만 통일이 가져다 줄 "평화의 배당(peace dividend)"에 비견할 바는
못된다.

평화란 반드시 국가간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며 국내에서는 특히 산업평화의
유지가 중요하다.

노사간의 이해와 협조를 증진시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노사관계의 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다음으로 국민들의 자유를 확충시키는데 있어 가장 유효한 체제는 민주주의
와 시장경제로 판정이 나 있다.

마침 현정부도 이 두 체제의 추구를 국정 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시장경제의
중요성은 다시한번 강조할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정부 주도적 성장전략이 추진되어 온 결과 정부나 국민
모두가 타성이 생겼고 기득권세력의 저항이 드세어 시장경제의 원리가
충분히 뿌리내리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규제완화와 관치금융의 청산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실천에 있어서 큰
진전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는 것이고 시장경제 또한 규범에 의해
질서가 잡혀져 있어야 할 것이다.

경쟁은 공정한 룰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시장참가자들의 권리와 의무
또한 명백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풍요함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효율적
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활용하여야 한다.

우리의 성장잠재력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나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기술부문이 그것인데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큰 산출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인터넷의 확충과 정보기술산업의 발달은 경제적 풍요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우리가 이 부문에서 선두그룹에 끼일수 있도록 교육 금융 세제
등 인프라를 구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생산 소득면에서의 풍요함과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 환경 교통 복지
의료 문화 등 삶의 질과 관련되는 분야다.

그중 환경오염의 문제는 특별한 대응책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물질적 경제적 풍요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적 문화적 풍요함
이란 점이 망각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경제는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점을 외면한채 눈앞의 단기적인
이해에 현혹되어 오다가 외환위기를 맞이하였고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만 경험이 있다.

새천년의 시작인 경진년에는 평화 자유 풍요를 장기적인 목표로 삼아
세부적인 전략을 설계하여 감으로써 한국경제가 멀지않아 이무기가 아닌
용(선진국)으로 승천할 것을 기대해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