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프롬킨 < 미국 보스턴대학 교수 >


31일 시계바늘이 12시 자정을 치는 순간 인류는 단순히 한 해를 넘기고 또
한 해를 맞는 것뿐만 아니라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 한다.

나아가 또 다른 새 천년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2000년1월1일이 오늘과 다른 특별한 날이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국제관계에서도 지구촌의 많은 독립국가들 중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패권국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지난 1천년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있어났던가.

역사를 지난 11세기로 되돌려 보면 당시 세계의 패권국은 중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은 송나라(960~1279) 때로 세계에서 가장 문명이 발달해 있었다.

상업화와 도시화가 주변국보다 훨씬 빨리 진행됐으며 새로운 농작물들이
이때 많이 선보이고, 인쇄 및 출판도 활기를 띠었다.

나침반의 등장은 항해술을 발달시켰다.

지폐와 화약이 발명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유럽이 이보다 훨씬 뒤늦게 이러한 모든 것을 만든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유럽보다 최소 몇 백년은 앞서 있었던 셈이다.

중국은 당시에 이미 인구 1억명으로 세계에서-지금도 그렇지만-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였다.

11세기 중반 무렵까지 중국은 정규군 숫자만 1백25만명에 육박했다.

2차대전 발발 직전 미국의 정규군 숫자가 불과 17만4천여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그렇다면 이러한 국력과 번영 문명을 어디에 사용했던가.

송나라는 당시 강력한 전제군주제로 광대한 영토와 주민들을 유지 관리하는
데 열중했다.

이와함께 몽골 등 주변국의 침입세력들을 국경 밖으로 내모는 데도 국력의
상당 부분을 소모했다.

주변 민족의 침략문제는 사실 중국의 커다란 걱정거리였으며 여기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중국연구가들은 중국이 국가 내부적인 일에 열중해야 할 문화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물리적으로 중국은 지방자치제도가 적합했다.

중국은 험준한 산악으로 지방들이 분리돼 있었으며 황하 양쯔 등 큰 강들이
대륙을 분할하고 있었다.

중국은 당시 교류를 가졌던 어떤 나라보다 문화적이고 부유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송나라는 이웃 국가들에 전파해줄 많은 문화적 자산이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중국은 이웃 국가들이 후진적이고 야만스럽다고 판단, 가까운 유대관계를
형성할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1천년 전과 지금의 최강국을 놓고 비교해보면 11세기의 중국은 주변
국가들을 변화시킬 의사를 갖고 있지 않았던 데 비해 오늘날의 미국은 다른
나라들도 변화하길 강력히 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미국도 자신들이 전통적으로 다른 민족과 달리
우월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어느 정도의 고립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미국은 서반구에서 정치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바깥으로 향하지 않았다.

미국은 자유를 신봉했지만 그것을 위해 싸우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가면서 이러한 정책(먼로주의)은 바뀌었다.

당시 윌슨 대통령은 만약 미국이 참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전쟁과 기존
정치체제에 종말을 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오로지 참전만이 미국 국민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세기의 후반부에서 금융 및 환경 기타 경제문제의 글로벌화가 더욱
진전되면서 미국이 지구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이에 걸맞은 리더십도 요구되고 있다.

나머지 국가들중 일부는 물론 이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면 각국이 각자의 처지에 맞는 정치체제를 택하는 데 미국이 올바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1천년전 중국은 자급자족하며 체제를 유지하는 데 노력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중국은 장구한 번영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립정책으로 중국은 19세기 근대문명과 접하면서 강대국 대열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바깥 세계로 눈을
돌렸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도 글로벌 변혁에 동참하길 바란다.

1천년전 세계강국이 "정적"이었다면 오늘날의 강국은 "동적"인 것이다.

앞으로 또 천년이 지나면 우리는 어느쪽이 보다 현명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정리=김재창 기자 charm@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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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데이비드 프롬킨 교수(미국 보스턴대학 역사 및 국제관계학)의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