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 단국대 교수 / 독어독문학 >


서울은 인구와 면적에 있어 세계적인 대도시로 팽창했다.

지나치게 많은 인구와 자동차가 도시기능을 마비시킬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넓게 뚫려 있는 도로, 설계가 단조롭지 않고 기능과
미관을 함께 고려한 최근에 지은 빌딩, 그 빌딩을 장식하는 자그마한 녹색
공간, 공간에 세워진 옥외조각 등이 조선시대의 유적들과 대조를 이루면서
전체적으로 수도로서의 그림을 제법 그려내고 있다.

서울의 입지환경은 외국의 수도와 비교해 볼 때 단연 빼어나다.

대부분의 외국 수도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반면 서울은 나지막한 남산을
도심에 안고 있어 안온한 분위기를 주며 근교의 미려한 산들이 도시를
감싸주고 있다.

또한 수량이 풍부하고 폭이 넓은 한강이 도시를 율동적 곡선으로 관통하면서
생동감을 더해준다.

강에는 여러 형태의 긴 다리들이 걸려 있어 교통수단이라는 기능 외에
시각적인 멋을 제공하고 있다.

만일 미군의 용산기지가 타지역으로 이전한다면 도시공간은 한결 시원한
녹색지대로 아름다워지면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수도로 꾸밀 수 있는 잠재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무학대사가 정한 도읍지가 6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현대적 수도로서 기능함은
그의 탁월한 선견지명 덕분이다.

그런데 서울의 거리마다 눈에 크게 거슬리는 것이 상호 간판이다.

이들은 크기도 지나치지만 이중 삼중으로 건물의 정면과 측벽에, 틈만
있으면 어지럽게 나붙어 있어 극심한 난조를 일으키고 있다.

간판들이 건물 외장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건물자체의 미관을
가리거나 손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호간판이 건물의 창문이나 문짝을 온통 덮어 버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창문은 맑고 밝아 공기와 햇살을 받도록 기능하지만 비밀스런 일들이 그
가린 창문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혐오감이나 의아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간판의 바탕색이 대부분 원색인데다 글씨체며 만든 폼이 제각각인 것
같으면서도 동일한 업체에서 쏟아져 나온 듯 개성없이 비슷하다.

음식점 간판이나 병원간판이 다를 바 없고 신발가게나 학원간판이 또한
다르지 않다.

이처럼 요란스럽고 지나치게 큰 간판은 내용의 빈약함을 반증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마치 장꾼을 태운 시골 버스나 완행열차 승객들의 큰 소리 대화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골의 버스와 완행열차의 분위기는 나름대로 소박한 맛을 풍긴다 하겠지만
서울의 거리는 어지럽고 볼품없다.

적당한 크기로 예술적인 멋의 간판이 내걸린다면 고객들의 인상에 남아
이를 더 잘 기억하고 찾아갈 것이다.

이젠 서울의 시민들도 맛과 멋을 알면서 음식점이나 의상실을 찾아다닐 줄
안다.

한국인들의 의상패션감각은 최근에 뛰어날 정도로 개발돼 도심을 오가는
시민들의 걸음걸이도 멋져 보이는데 바로 그 아름다움은 조잡한 상호간판
때문에 그로테스크한 거리의 풍경을 만들어 버린다.

천혜의 아름다운 서울을 문화풍과 예술풍이 감도는 도시로 변모시켜 나가는
변화가 서울거리의 상호간판에서 일어나야 한다.

상호를 만들어 다는 업주는 일정한 미감각을 가진 자격소유자로 제한한다든
가 우수 상호 간판에 대해서는 매년 시상하는 것도 거리를 아름답게 가꿔나가
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규제를 푸는 것이 모두 좋은 것이 아니고 필요한 규제는 오히려 아름답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자기 집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페인트칠을 할 수 없다.

도시 미관에 어울리는 색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상호의 규격도 정해져 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예를 들어보자.

모차르트가 태어난 이 음악의 도시는 거리마다 내걸린 상호가 조각이나
예술품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색조로 만들어진 그 상호간판은 오히려 행인들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유명한 업소일수록 상호부터가 멋이 있어 문화의 향기를 느끼게 하고 있다.

서울시가 유럽의 아취있는 거리를 보고 배우면서 좀 더 밝고 맑은 시민의
쉼터 공간을 조성하는 "틈새"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서울 거리의 품격을
높여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가 위원회를 좀더 활성화해서 자문받기를 바란다.

이러한 위원회는 건축을 비롯한 도시공학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사학자
문화사가 미술인 문인 음악인 환경운동가 산림전문가 등으로 구성돼야 하며
모두가 안목있는 화음을 낸다면 한국인이 아직 자랑할 수 없던 도시 문화를
세계에 보여줄 시발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hangiso@chollian.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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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독문학 박사
<>저서:독문학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