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의 한국경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숫자로 표시되는 결산서는 당기순이익이 엄청나다.

작년의 마이너스에서 3.4분기이후 두자리 숫자로 뛰어오른 성장, 2백50억
달러 안팎으로 추정되는 경상수지 흑자, 안정세를 나타낸 물가가 그것이다.

주가도 크게 올랐다.

겉으로 나타난 것만 보면 장밋빛이 찬란하기만 하다.

IMF 질곡을 완전히 벗어나는 성취를 기록했다고 평가하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는 외양이다.

그러나 그 속을 뜯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업이 추구해야할 가장 큰 가치가 지속성( Going Concern )이라는 점마저
망각한 단기업적주의적 경영자가 주총에 낸 결산보고서처럼 지적해야 할
대목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성장 국제수지 물가등 하나같이 좋은 99년 거시경제지표들이 국민경제
의 내부에너지 분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대외여건에
힘입은 행운의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측면에서 그런 지적이 가능하다.

또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정부의 경제운용방식등 숫자로 표시하기
어려운 내면적인 요소들은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퇴영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지난 한해 정.재계 관계는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이른바 빅딜을 둘러싼 우여곡절이 정.재계간 난기류를 낳은데 이어 조양호
대한항공회장, 신명수 신동방회장, 이익치 현대증권회장,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등이 탈세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정.재계 관계가 꼭 밀월을 유지해야 할 당위성은 절대로 없다.

또 영향력있는 재계인사라 해서 구속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대기업 탈세사건
을 꼭 쉬쉬하며 처리해야 할 까닭도 없다.

정경유착의 해묵은 고리를 깨뜨리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99년의 정.재계간 관계는 어떻게 보더라도 결코 정상적이지 못했고,
그래서 경제에 적잖은 부담이 됐다.

노조전임자 임금문제와 관련, 재계가 이른바 "정치활동"을 선언한 것도 그런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것은 표면상의 이유외에 정부정책이 반대기업적 성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누적됐기 때문에 나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선단식경영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되풀이된 정부관계자들의 발언, 사외이사제
확대등 기업지배구조 개편, 부채비율 2백%이내 억제는 물론 구조조정과정의
불만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대한생명 제일은행 서울은행 처리나 대우자동차및 한국중공업등 대형 공기업
민영화논의과정은 실제로 국내 대기업을 배제하는 역차별적 측면도 없지않기
때문에 재계입장에서 불만이 쌓일 소지는 충분하다.

그 원인이 무엇이고 과정이 어떻게됐든 상호불신으로 불편해진 정.재계
관계는 문제다.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진입한지 오래지만 이렇다할 대규모 신규투자
사업이 없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 시장경제라면 기업의욕과 자율이 존중돼야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IMF이후 이래저래 비정상적으로 팽창한 경제에서의 정부비중, 정부주도적
밀어붙이기식 기업정책의 시정은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다.

4대그룹에 이어 내년에는 다른 주요 대기업들도 부채비율을 2백%이내로
줄여 이른바 차금경영의 오랜 폐습을 떨쳐버리는 만큼 정부도 기존의
경제운용방식을 고치는 것이 당연하다.

산업현장은 1년 내내 마찰의 연속이었다.

노조전임자 임금 금지조항 폐지요구파업으로 동투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2년의 유예기간이 남아있는데도 노조전임자 임금문제가 이슈화한 이면에는
민노총이 합법화돼 제도적으로도 양대 노총체제가 된데다 총선이전에 이
문제를 쟁점화하는게 유리하다고 노조측이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영화반대등 구조조정과 관련된 파업도 이어졌다.

이런 유형의 파업들은 그 성격상 사용자가 교섭대상이 되기 어려운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장기화되는게 일반적인 양상이다.

여기에 조폐공사 파업 "유도"사건의 파장이 겹쳐 노사문제가 더욱 복잡해진
셈인데, 공기업구조조정은 물론 경제운용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힘겨루
기라는 측면에서 우려가 더할 수밖에 없다.

노조파업외에 그린벨트주민등 각종 이해당사자들의 집단이기주의적 단체행동
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과 원칙에 입각한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보면,
우리 경제의 앞날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높은 성장률, 국제수지흑자등 겉모양과는 달리 걱정스러운 측면들은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뉴욕증시 다우존스지수 움직임과 동반하는 양상으로 큰 폭으로 오른 주가만
해도 그렇다.

외국인투자자의 향배에 따라 움직여지는 증시, 그것은 자본시장이 단기
투기성 외자의 영향권안에 있다는 얘기로 통한다.

"국경없는 경제"시대의 불가피한 선택일지는 몰라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IMF이후 금가기 시작한 "평생직장"의 관념이 벤처붐등으로 급격히 붕괴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일이 아니다.

아직도 1백만명에 달하는 실업자가 존재하는 가운데 빚어지고 있는 높은
이직률, 그것은 한국경제의 활력이 아니라 불안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업자수가 반감했다는 얘기지만 악화된 소득구조가 나아지는 조짐은 아직
없다.

숱한 미해결의 과제를 남긴채 천년의 마지막 해가 저물고 있는 셈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