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페레스 < 전 이스라엘 총리 >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지난 96년 중단됐던 중동평화협상을 최근 재개했다.

3년만에 재개된 이번 중동평화협상이 갖는 중요성과 그 의미는 두 나라
사이의 대외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양국의 평화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고 합의문이 도출될 수 있다면
이는 과거 수많은 전쟁과 갈등으로 "세계의 화약고"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중동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전기를 조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동은 모두 24개 나라로 구성돼 있다.

이중 23국이 아랍권 국가다.

유일한 비아랍권 국가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전세계 3대 종교중 하나의 발상지가 중동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중동 국민들은
과거 50여년간 지속된 크고 작은 다섯번의 전쟁으로 많은 목숨을 잃었다.

이 사실은 역사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 50여년동안 일어난 전쟁들은 이 지역 국가와 국민에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중동지역의 분쟁을 종식시킬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총성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아닌 협상테이블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집트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팔레스타인이 오슬로에서, 다음엔
요르단이 아라바에서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갖고 평화의 실마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이같은 개별 국가들만의 협상은 중동지역을 분쟁이 없고 경제적인
협력을 나누는 공동체로 탈바꿈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때로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군비경쟁은 아랍권 국민들의 생활과 목숨을 희생하면서 지속돼 왔다.

군비경쟁은 끊임없는 가난과 공포를 초래했다.

경제적 발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러한 침체에 대한 아랍권 국가들의 공식적인 변명은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 등과의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라는 게 고작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걸프지역의 국가들,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국가들-호전적인
이란 이라크 리비아같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동국가-은 종종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평화협상이 원만히 타결된다면 중동지역의 교전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시사해 왔다.

점차 악화되고 있는 실업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만한 근대적 산업이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중동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막지역을 개발해 나갈만한 수자원이 부족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체계적인 대책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교육기회의 부족으로 이 지역 젊은이들은 중동이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변화 발전하고 있는 세계경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등 모든 것이 전략적인 고려사항이다.

이 때문에 중동에서는 말 그대로의 경제적인 삶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군비경쟁을 자제하고 인터넷 등 정보통신혁명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중동은 여전히 구시대의 군사대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어떤 나라도 절름발이 중동경제를 지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동은 스스로를 구제해야 한다.

다행히 중동은 그럴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

중동은 이제라도 하루속히 군비경쟁에서 벗어나 시민의 삶의 질과 복지로
눈을 돌려야 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로 화해했다.

그리고 유럽연합(EU)이라는 정치.경제 통합체를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오랜기간 불편한 관계였던 멕시코와 미국도 북미자유무역지대
(NAFTA)를 창설했다.

중동은 이같은 케이스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미래의 비전을 가꿔 나가야
한다.

세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중동은 결코 변화되지 않는 얼음이나
강철벽돌로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문제, 예컨대 국경분쟁 무장해제 수자원공급 외교관계 경제적 연대
등과 같은 문제는 조만간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까지의 중동상황은 수술받기 직전의 마지막 경련이나 발작과 같은
것이다.

지난 95년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의 뒤를 이어 내가 총리에 올랐을 때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을 진전시켜 나갈 것을 제의해
왔다.

물론 나는 구두와 문서로 이에 대해 확답했다.

최근에도 클린턴 대통령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이
중동지역의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화해 및 합의로 발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서한은 하페즈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도 보내졌다.

그리고 그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단지 두 나라 정상만이 악수하며 평화협상을 하는
장면보다 20명이 넘는 이 지역 정상들이 함께 악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 역사적인 사건이 이뤄지는 날 세계는 새롭게 탄생한 중동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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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김재창 기자 char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