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광남 < 과학기술정책연 원장 >

미국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호 안에서 탈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배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 배에 형제가 같이 근무하면서도 얼굴 한번 못 봤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치 그 배처럼 우리사회는 커졌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 과학기술은 스며들어 있다.

우리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수많은 기기들은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요즘 Y2K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것도 과학기술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기술을 너무 거창한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과학기술은 일부 과학자나 엔지니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국민이 알고 실생활에 응용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를 보자.

필자가 지난 70년대 프랑스 유학시절 묵었던 하숙집은 나무 계단이 삐꺽
거리는 아주 낡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자동 타이머를 갖춘 등이 복도에 달려있었다.

과학기술을 일상화하는 수준에도 감탄한 적이 있다.

프랑스인들은 한 여름에도 출근 전에 대문과 창문을 꼭꼭 닫는 것이었다.

더운데 왜 그런가 의아했다.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니 더 높은 바깥 열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밤새 시원해진 집안 공기를 그대로 유지시키기 위한 지혜인 셈.

이처럼 이들에게 과학은 일상에서 생생히 살아 숨쉬는 존재다.

이제 한국인들도 생활속에 과학이 스며들어야 한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과학기술은 급속히 발전해왔다.

앞으로 어떤 속도로,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오게 될 지 알 수 없다.

메모리 D램의 용량이 얼마나 더 커질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 작은 크기에 조정래의 10권 짜리 소설 "태백산맥"을 몇 백질씩 담을 수
있는 제품도 틀림없이 나올 것이다.

복제 기술도 급속히 발달하고 있다.

이제 인간복제가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해외에선 이를 둘러싼 도덕성 문제 공방이 이미 불붙었다.

이같은 추세를 따라잡기 위해선 기술을 예측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술예측도 기존의 로봇 생명공학등의 기술분야별 접근외에 "우리가 사는
집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라는 식의 종합적인 시나리오 접근도 병행돼야
효과적이다.

어떤 식으로든 더욱 치열해질 "기술전쟁"에 미리 대비하는 것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필자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대학교육의 실상을 보면 개선돼야 할 점이 수두룩하다.

먼저 대학이 너무 비즈니스 마당으로 바뀌고 있어 걱정스럽다.

대학교수들이 "벤처다" "실험실 창업이다"하면서 상업화할 수 있는 기술만
중요시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대학의 기술을 산업으로 이전시키는 등의 긍정적 효과를 부정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교수들이 현대판 허생전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수들이야 기성세대이니 그렇다 치자.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다.

요즘 학생들은 깊이 있는 연구보다 최단 시간에 결과가 나오는 프로젝트에
몰리고 있다고 한다.

교수밑에서 같이 연구하는 석.박사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진정 한국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경쟁력은 원천기술이 없으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프랑스에서 열린 어느 세미나에서 본 일이다.

어느 소장 학자가 "어렵게 배운 편미분방정식이 실제 연구과정에서는 거의
쓸모 없었다.

불필요한 정력을 낭비한 게 아니냐"고 수학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한 노 교수가 "자네가 그렇게 기초기술을 응용기술과 비교해
실용화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기초과학을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네"라고 말해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제 포괄적인 기초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한 창조성있는 사고가 필요한
시대다.

새롭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젊은 과학기술 인재들이 길러져야
한다.

이를위해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과감하게 도입해야하는 것이 절실하다.

아울러 산.학.연의 긴밀한 협조도 꼭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서로 가까워져야 한다.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하는 분들이 중소기업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
자체가 자극이 된다.

중소기업의 기술수준은 천차만별이므로 지원과 자문의 수위도 다를수 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나오는 세부적인 질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선문답식 컨설팅은 의미가 없다.

정부도 이런 산.한.연 협력으로 이룬 성과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 줘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 과학기술 경쟁력 제고와 국민 인식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한꺼번에 잡히는 일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knkang@stepi.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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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물리학과 학.석사
<>프랑스 그르노블 공대 전자공학박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