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포도를 생산하는 중소업체인 A사.

이 회사는 LG유통에 매달 1천만원어치를 납품한 뒤 결제일인 다음달 20일에
만기 2개월짜리 어음을 받아왔다.

A사의 P사장은 빠른 자금확보를 위해 은행에 달려가지만 1.5%상당의 이자를
떼고 어음을 할인(깡)받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9백85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년부터 P사장은 납품액 전액을 현금으로, 그것도 단 10일만에
받을 수 있게 돼 자금사정이 한결 나아질 수 있게 됐다.

수퍼마켓과 편의점 "LG25"를 운영하는 LG유통은 2000년 1월부터 5백여개
협력업체에 대한 어음발행을 전면 폐지하고 모든 결제를 현금으로 실시
하겠다고 27일 발표했다.

어음거래에 익숙해져온 국내 유통업계의 거래 관행에 비춰본다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LG유통은 또 납품받은 제품에 대해 검품과정에서 하자가 발견된 경우를
제외하곤 전량 자체적으로 책임지고 판매하는 "무반품 구매" 제도도 함께
도입키로 했다고 밝혔다.

LG유통의 이번 조치는 국내 유통업계의 거래관행을 바꾸는데 기폭제 역할을
할 전망이다.

롯데백화점의 할인점인 마그넷도 내년부터 1백% 현금결제를 추진중이며
E마트도 이를 적극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모두 유통업체중에서 가장 자금력이 풍부한 업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백화점 중에서는 신세계백화점이 매장 입점업체들로부터 상품판매가의 30%
가량을 수수료로 받아온 특정매입 방식을 벗어나 전량 자체 구입및 재고부담
을 축으로 하는 완전 직매입 방식으로의 전환을 준비중이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에서는 어금결제와 반품, 재고부담 떠넘기기 등 협력업체
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돼온 낡은 관행이 사라지고 소비자와 함께 모두가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신거래질서가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고의 제품을 가장 싼값에 =LG유통이 1백% 현금결제를 선언한 것은
협력업체로부터 고품질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받겠다는
의도에서다.

특히 할인점의 저가 공세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수퍼마켓 업체로서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당면 과제다.

강호정 LG유통상무는 "유통업체 혼자로는 원가절감의 한계가 있다"며
"유통업체와 협력업체가 만나는 접점에서 효과적인 원가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류업체인 쎈서스의 경우 원자재 구입시 전량 현금으로 결제,
원료 구입비를 20%가량 줄이고 있다.

LG유통은 완전 현금결제를 통해 제품 구입비용을 5~10% 가량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적정물량을 발주함으로써 반품 소지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무반품 구매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협력업체에게는 좋기만 한가 =협력업체들은 LG유통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내의 업체인 "좋은사람들"의 조원희 영업팀장은 "자금회전율이 빨라지면
원단확보가 원활해져 유행상품을 그만큼 조기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금결제와 무반품 구매제도로 유통업체측에서 적정 물량을 발주하게
될 경우 과거에 비해 납품량은 줄게돼 전체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또 현금결제를 명분으로 납품가 인하 압력이 더 세질수 있다는 것도
협력업체들의 걱정중 하나다.


<>소비자들에게는 혜택이 있나 =LG유통 롯데마그넷등 1백% 현금결제를
추진하는 업체들은 한결같이 조달원가를 낮춰 판매가격에 반영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금 결제로 구입비용을 낮출 수는 있지만 어음발행시에 비해
금융부담이 높아져 원가절감 효과가 상쇄됨에 따라 유통업체들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유통업체들은 속성상 가격인하에는 매우 소극적"
이라며 "현금결제가 협력업체에 대한 가격인하 압력으로 이어져 유통업체의
이윤만 늘릴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고 말했다.

< 김수찬 기자 ksch@ked.co.kr 윤성민 기자 smyoo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8일자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