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영화의 세기였다.

그 꿈과 환상의 세계를 향한 징검다리는 19세기말에 놓여졌다.

수많은 발명가와 과학자 중 에디슨이 한발 앞섰다.

에디슨은 1889년 천공된 셀룰로이드 필름을 발명하고 최초의 진정한 카메라
라고 할 수 있는 키네토그래프를 개량했다.

1894년을 전후해 돌아가는 필름을 혼자서 볼 수 있는 키네토스코프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1년 뒤 프랑스의 사진재료 공장주였던 뤼미에르가 한발 더 내디뎠다.

관객이 모인 극장에서 영화를 돌릴 수 있는 영사기를 발명,
"시네마토그라프"란 이름으로 특허를 내 진정한 영화역사의 장을 열었다.

뤼미에르가 처음 유료로 상영한 "공장 출구"는 영화의 전형으로 받들어졌다.

1897년 파리 생 드니에 세운 "시네마 뤼미에르"는 세계 최초의 극장이
되었다.

파리 국제박람회가 열린 1900년부터 1920년 사이 영화는 폭발적인 기세로
발전했다.

1909년 국제 제작자 및 배급자협회가 에디슨의 35mm 필름을 표준형으로
고시, 각기 다른 영사기를 이용하던 혼돈의 시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개척자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산업으로서의 영화사가 시작됐다.

영화의 형태도 변했다.

1914년 미국에서 그리피스가 만든 "국가의 탄생"을 기점으로 원시영화가
고전영화로 탈바꿈했다.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등 요즘의 할리우드를 움직이고 있는 영화사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무성영화의 거장들이 1920년대를 누볐다.

영화적 탐구를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물결도 일기 시작했다.

독창적 사상과 감정을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한 젊은 세대의 열정이 거셌다.

그런 가운데 미국영화가 막강한 위용을 과시했다.

경제력이란 뒷받침에다 뒤늦게 참전한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데 힘입어
세계시장을 잠식했다.

메이저 영화사들이 할리우드를 장악했다.

이 시기는 또 유성영화를 탄생시켰다.

워너의 "재즈 싱어"(1927년)와 "뉴욕의 불빛"(1928년)의 흥행성공으로
유성영화 제작경쟁이 불붙었다.

30년대는 할리우드의 황금기였다.

대공황의 그늘속에서 스타시스템이 갖추어졌다.

스타들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역과 역할을 구축하며 인기와 돈을 몰고
다녔다.

"미키 마우스""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등 색깔까지 가미된 만화영화도
활개를 쳤다.

2차대전이 터지면서 영화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통제에 들어갔고
이념선전의 도구로 활용됐다.

영화는 1950년 초부터 TV란 강력한 라이벌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했다.

그리고는 쇠락을 길로 접어들었다.

TV보급이 확대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수가 현저히 줄었다.

기세등등하던 할리우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 정부는 메이저 영화사의 극장독점 금지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영화사는 도산위기에 처했다.

할리우드는 돌파구 찾기에 골몰했다.

첫째 방법은 천연색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영화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컬러효과를 내는 기술이 개발돼 왔지만
그리 신통치는 않았다.

할리우드의 욕구는 결국 보다 싸고 편리하면서도 천연색에 더욱 가까운
이스트맨 컬러모노팩의 개발을 낳았다.

입체감과 더불어 크고 넓은 화면을 보여주는 시네마스코프도 개발됐다.

이러한 기술개발은 대형 스펙터클 영화제작에 불을 붙였다.

드라이브인 극장도 생겼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란 사조가 1960년 들어 등장했다.

이론적 지식으로 무장하고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관심을 얘기한 젊은 감독들
이 큰 업적을 남겼다.

할리우드는 황혼기였다.

전통 스타시스템과 장르영화의 몰락으로 위기감이 증폭됐다.

대형 스튜디오가 문을 닫았다.

1970년엔 MGM, 그리고 이듬해 폭스사가 경매에 부쳐지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TV의 위력은 더해져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은
더욱 줄었다.

1989년 미국의 영화관객은 1950년의 3분의1 수준에 그쳤다.

할리우드는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블록버스터들이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영화사들은 발빠르게 TV와 결합해 위기를 넘기고 세계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갔다.

소니가 컬럼비아, 마쓰시타가 MCA-유니버설을 인수하는 등 일본의 엔공세가
할리우드를 강타하기도 했다.

영화의 전반적인 위기속에서도 비교적 어려움을 덜 겪은 할리우드는 세계
각국에서 모범으로 삼았다.

대작중심의 스타일이나 보편적 주제, 전형적인 영화형식 등 할리우드 방식이
각 나라로 전파됐다.

각국의 영화시장에 대한 할리우드 영화의 침투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