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통 13마력의 가솔린엔진을 단 플라이어호는 12초동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해안 상공을 36m 가량 날았다.

새처럼 하늘을 날기 위한 태고이래 인류의 꿈을 실현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1903년 12월17일 라이트형제가 직접 만든 플라이어호는 이어 59초동안
2백90m를 나는 기록을 세웠다.

라이트형제 이후 비행기는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했다.

1909년 프랑스의 루이 블레리오는 3기통 엔진을 부착한 비행기를 타고
도버해협(34km)을 34분만에 횡단했다.

비행기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진면목을 보였다.

이때 비행기의 속도는 벌써 시속 2백4km에 이르렀다.

1차대전이 일어나자 정찰기 폭격기 전투기 등 수많은 비행기가 등장했다.

1차대전 동안 제작된 비행기만 무려 20만대.

전쟁이 끝날 무렵 비행기의 속도는 3백13km까지 높아졌다.

종전 다음해인 1919년부터 1933년 사이 비행기록 경쟁의 시대가 전개됐다.

1924년 3월 미국 로웰 스미스는 더글러스기를 타고 1백75일만에
4만9천5백60km를 날아 처음으로 세계일주 비행에 성공했다.

3년후 찰스 린드버그는 뉴욕 루스벨트 비행장을 이륙해 대서양 5천8백km를
33시간30분에 날아 파리에 안착했다.

1929년 미국의 리처드 버드는 남극 탐험비행에 성공, 극지경유 항공로를
개설했다.

이어 제트기관의 개발이 이어졌다.

제트기관은 비행기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견인차가 되면서 2차대전의
전세를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제트기관은 영국의 프랭크 휘틀이 케임브리지대학 재학중에 고안, 1930년에
특허를 받았다.

독일의 하인켈은 9년뒤 제트기관을 이용해 최초로 비행했다.

2차대전이 끝난 후에 각국은 초음속 비행기의 개발에 열을 올렸다.

미국과 영국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이 1947년 벨X-1 연구기를 이용,
성층권에서 음속의 벽을 최초로 넘었다.

독일의 로켓무기인 V-2 개발에 참여했던 많은 기술자들이 전쟁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으로 이주하면서 대륙간 탄도탄 개발 경쟁이 불붙었다.

탄도로켓의 개발은 우주의 지구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의 발사로 이어졌다.

소련은 1957년 사상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를 성공시켰다.

선수를 빼앗긴 미국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58년 항공우주에 관한 연구
개발을 전담하는 국립항공우주국(NASA)를 설립했다.

1960년대는 미.소가 경쟁적으로 우주선을 발사하는 시기였다.

소련이 먼저 1961년 4월에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1호를 발사해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돌고 무사히 귀환, 최초의 유인우주비행을 실현시켰다.

66년에는 소련의 루나 9호가 최초로 달에 연착륙해 무인탐사를 실시했다.

69년 7월20일에는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으로 운반된 달착륙선이 암스트롱과
올드린을 태우고 달에 착륙했다.

유인우주계획과 함께 태양계 행성에 대한 탐사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75년 소련의 금성9호는 최초로 착륙선을 금성표면에 내려 보냈다.

76년에는 미국 바이킹 1,2호의 착륙선이 화성에 내려앉아 여러가지 조사
작업을 벌였다.

80년에는 미국의 보이저 1호가 목성에 접근, 관측사진을 보냈다.

81년에는 보이저 2호가 토성에 접근하고 89년에는 해왕성을 통과해 태양계
를 벗어난 인공위성이 됐다.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경쟁을 승리로 이끈 후 우주왕복선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81년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를 발사했으며 애틀랜티스호,
디스커버리호 등을 차례로 우주공간에 쏘아 올렸다.

97년에는 패스파인더호가 화성에 착륙, "소저너"라는 탐사차를 이용한
화성탐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같은 우주탐험의 도전은 이제 우주정거장의 건설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92년부터 추진해온 국제 우주정거장 "알파" 건설이 오는 2004년 1월에
마무리된다.

가로 1백8m, 세로 74m, 무게 4백2톤의 우주정거장은 앞으로 우주탐험의
새로운 장을 열게될 것이다.

< 송대섭 기자 dsson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