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최근 "민법상 동성동본 금혼조항이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동성동본간 혼인은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 97년 7월 이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헌재가 2년이
훨씬 지난 후 이런 발표를 되풀이한 것은 국회를 겨냥해서다.

당초 정부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동성동본 금혼조항을 폐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는 1년 이상 심의를 지연시키다 지난 17일 이 조항을
되살린 채 법안을 의결했다.

법사위의 결정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아직 본회의의 의결이 남아있긴 하지만 법사위 안대로 처리될 경우 동성동본
혼인은 여전히 불법이고 혼인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법사위는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로 현실적으로 동성동본
혼인이 가능한데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결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법조항이 사문화됐다면 현실에 맞게 고치는게 국회의 당연한 의무다.

또 "사회적 합의"라는 것도 핑계에 불과하다.

이를 이유로 법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의원들의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스스로의 소임을 포기하는 일이다.

사실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은 한전민영화법이나 국가보안법 등 민감한
법의의 심의를 지연시킬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법사위가 동성동본 금혼조항을 되살린 이유는 무엇보다 "유림의 반발"과
의원들의 "몸사리기" 탓이라는게 솔직한 분석이다.

오래전부터 여성계는 이 조항을 폐지하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유림들은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의원들은 표의 "응집력"에서 여성계보다 훨씬 강한 유림의 의견을 수용한
셈이 됐다.

이제 누군가가 또 헌법 소원을 내고 헌재는 다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야
할 판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법개정안을 제출하는 절차를 되풀이 해야 한다.

동성동본 혼인이 현실적으로 허용되면서 이와 배치되는 민법 조항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헌재의 결정이 우선하는지, 국회의 결정이 적용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불가피하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는 헌재와 국회의 상충된 결정을 조정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현실에서 소신있는 의정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김남국 정치부 기자 nk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