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바트화 폭락사태로부터 발화한 금융위기가 인접 국가들로 번져 종내는
한국까지 포함해서 아시아국가들이 줄줄이 IMF구제금융에 목을 맨 신세가
돼 있던 작년 여름 중국방문을 끝내고 귀로에 홍콩에 잠시 들른 클린턴 미
대통령은 그곳 실업인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미국과 아시아 관계의 장래가
다음 세가지 원칙에 의해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 핵 확산금지, 둘째 투명성(transparency), 그리고 셋째가 정치적
자유와 인권존중이었다.

여기서 특히 관심을 끈 것은 투명성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당시 그는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상기하면서 그 점에 언급했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이 연설에서 "국가가 참되고 지속적인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정부운영이 투명 솔직 공정해야 하고 금융시장을 지배보다는 단지 관리감독
해야 할 것"이라면서 "연고주의, 부패, 과다한 부채 등의 연약한 기반 위에
세워진 고속성장 경제가 무너지고...투자가들에게는 일순간에 엄청난 피해를
안기면서 그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어느덧 1년반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우리로서는 IMF 두 돌을 넘긴
지금 우리는 IMF사태를 초래한 배경에 관한 논의는 잊은 채 예상보다 빨리
위기극복에 "성공"했다는 자긍심과 함께 곧 닥칠 새 천년 첫해의 "장밋빛"
경제전망에 들떠있다.

주가가 뛰고 여유자금에 심지어 빌린 돈까지 증시로 몰려들고 있다.

특히 코스닥시장의 열기는 과연 어디까지, 언제까지 갈지 예측이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순간 잠시나마 IMF악몽의 진정한 배경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어 볼 필요가 있다.

그 교훈을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이 각인하지 않고는 결코 IMF위기가 끝난
것도, 제2 제3의 위기가 없다고 장담할 처지가 못된다.

진정한 배경이란 다름 아닌 투명성 문제다.

좀 심하게 말하면 하나에서 열까지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기지 않고,
믿기지 않기 때문에 지금 넘쳐난다는 달러가 언제 또 빠져나가 다시 위기에
봉착할지 모르는 것이다.

지난번 사태를 신용위기라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 바꿔 말해서 투명성위기인 셈이었다.

우리에겐 처음부터 투명성이 결여돼 있었다.

그게 없이도 별 문제없이 경제도 기업도 굴러갈 수 있었다.

적어도 예전엔 그랬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된다.

우리경제의 글로벌경제 편입이 가속화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강한 투명성
제고압력에 직면하게 됐기 때문이다.

압력은 장차 갈수록 더욱 거세질 것이다.

투명성 문제는 단지 서양식 사고와 기준일 뿐 동양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논리 갖고는 어차피 생존이 어려워진 게 분명해진 이상 투명성 확보는
우리에게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하루아침에 투명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은 해야하고 노력이 성과를 거두어 차츰 투명해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IMF사태 초반 한동안 요란했던 온갖 개혁약속과 부산했던 개혁작업은
예상보다 빠른 지수경제 회복소식에 묻혀 그만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투명성 문제와 관련 깊은 몇 가지만 예로 들어봐도 부패방지법은 여전히
국회통과를 장담할 입장이 못되는 상황이고,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은 지금
어디쯤 가 있는지 오리무중이고, 과세특례제도 개선은 결국 유야무야 될
전망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많은 외국기업인들이 한국의 기업환경 투명성을 금융위기
이전보다 되레 더 나빠졌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또 그렇다보니까 유입되는 외국돈이 증시에는 주로 단기매매차익을 노린
투기성 자금, 그리고 기업인수합병과 직.합작사업에서는 가급적 헐값에 사서
나중에 비싸게 팔아 큰 이익을 봄직한 투자에 쏠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회계에서만 투명성 확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치자금에서부터 경제와 사회의 모든 활동이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

투명성이 확보안된 위기극복은 진정한 극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투명성 확보의 핵심은 정직과 준법이다.

거짓과 탈법 불법이 아무 거리낌없이 통용되는 사회는 결코 투명해질 수
없다.

언론대책문건, 옷로비사건,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등 최근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건에서 우리는 현란한 거짓말의 곡예를 본다.

또한 법을 우습게 알고 준법이 되레 손해가 되는 풍조, 게다가 때로는
준법이 노동쟁의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희한한 풍토 속에서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부정과 부패의 근절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투명성 확보는 결코 포기해선 안될
과제다.

다시 숙제로 넘겨지긴 했어도 총선이 있는 새해에는 더욱더 그 결의를 굳게
다져야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