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경제학을 "희소가치의 배분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하지만 이를 거꾸로
돌려 봐도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니다.

넘쳐나는 노동력(실업), 주체할수 없는 돈(인플레), 주인을 찾지 못한 재화
(재고)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즉 "과잉"의 대처방법을 모색하는 일이야말로
경제정책이자 기업경영이라는 얘기다.

20세기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일본기업들은 세가지 과잉의 처리에 골머리
를 앓고 있다고 한다.

주간 다이아몬드 최근호(12월4일자)는 세가지 과잉으로 차입금, 인력,
설비를 꼽고 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닛산자동차다.

닛산은 지난 11월말 중간결산에서 5천2백42억엔이란 상장기업(금융기업
제외)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으로 따지면 7천3백억엔 적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적자는 과잉의 해소과정에서 필요했던 거액의 코스트 때문이다.

과잉의 해소에는 생산라인의 이전비용, 설비의 폐기비용, 종업원의 조기
퇴직에 따른 퇴직금할증액 등 적자요인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닛산은 이제까지 5개공장을 폐쇄, 생산능력의 30%를 삭감했으며 인원도
1만8천명을 줄였다.

과잉해소는 올 상반기에 닛산을 인수한 프랑스 르노자동차로부터 파견된
경영진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닛산의 경영진은 과잉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사태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과잉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 기대를 버리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시장이 회복되면, 자동차가 팔리기 시작하면 언제라도
과잉은 해소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닛산의 과잉은 버블(거품)경제시대를 거치면서 불어났다.

일본자동차 시장은 80년대 후반 크게 부풀어 올라 90년도에 연간 7백80만대
시장이 됐다.

닛산에 있어 최대의 악운은 버블이 붕괴되는 시점에 규슈의 신공장이 완공
됐다는 점이다.

시장이 피크(정점)일 때 공장을 신설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을 때 가동에
들어가는, 최악의 사이클이 되고 말았다.

급히 다른 공장을 폐쇄했지만 자동차 시장이 축소돼 들어가는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

이후 온갖 수단으로 과잉에 대처해 봤지만 닛산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결국 한순간 잘못된 시장동향 파악으로
망한 전형적인 케이스로 남게 됐다.

일본의 업계를 놓고 보면 석유화학 철강분야가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정치에 있어서 군소정당이 난립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세계시장에서는 대규모 합병이나 사업부문 통합이 일어나고 있지만 일본
업계는 이같은 상황을 전혀 따라잡지 못한다.

난립은 과당경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과잉을 끌어안고 가는 요인이 됐다.

철강업계에서는 수년간 감산이 이어져 왔다.

인원삭감이 뒤따르고 철강제품의 가지수를 줄이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나
과잉이 쉽사리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각종 경제지표를 보면 일본업계는 분명히 세가지 과잉(차입금 노동력 설비)
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4분기중 일본기업의 사채총액(장단기차입금)은 5백66조4천7백억엔
으로 전년동기와 비교할 때 줄어들지 않았다.

일본은행의 단칸(단기경제관측 조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고용여건이 호전
되고 있다곤 하지만 경기회복에 뒤이어 후행적으로 개선되는 고용상황의
성격상 아직도 인력과잉이라는 경영자들의 판단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주간다이아몬드는 "일본기업들은 세가지 과잉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스타트라인에 서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에 비해 기업경영자들은 정부정책이나 해외경기회복과
같은 여건의 개선에 기대를 걸고 달콤한 현실인식에 안주하고 있다고 진단
한다.

< 박재림 기자 tr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