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 본사독점전재 ]

실패로 끝난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총회의 승자는 누구며 패자는
누구인가.

환경론자들과 노동조합,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을 합한 WTO 반대 시위대가
승자인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마이크 무어 WTO 사무총장 및 다국적 기업들은
패자들인가.

시애틀에서 공방전이 펼쳐지는 동안 세계 60억 인구중 50억명 이상을
대표하는 그룹은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 50억 인구는 개발도상국들과 가난한 나라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 살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진짜 패자(피해자)는 바로 이들이다.

시애틀 사태의 승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시애틀회담이 일반적 의미에서나
좀더 자유로운 무역의 관점에서나 모두 세계화의 절정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세계화가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차라리 거꾸로 흐르고 있다.

이같은 세계화의 퇴보를 막기 위해 지금 다시 새로운 전투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무역자유화 확대에 실패하거나 세계화가
급격히 후퇴한다면 손해보는 쪽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손해보는 쪽은 개발도상국이다.

달리 말하면 가난한 나라들이다.

시위대중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시위대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섰으며 다국적기업
과 착취자들, 그리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자들에게 저항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노동기준을 무역과 긴밀하게 연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미국
노동조합들조차도 자신들의 가장 큰 바람은 인도의 어린이들을 돕는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들은 노동착취를 금지하는 미국의 근로기준을 해외에 전파하고 싶어한다.

여기엔 어린이 노동을 금지시키는 것도 들어있다.

미 노조는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구상에 확산시키고 싶다고
주장한다.

미 노조는 정말로 이런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전에 시애틀에 모인 개발도상국들은 이것에 어떻게 생각했겠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개도국들은 이런 생각을 증오했을 것이다.

정부의 이해와 정부를 움직이는 엘리트들의 이해가 국민들의 이해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또는 대부분의 경우 일반국민들의 시각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도 어린이를 생각해보자.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인구면에서)인 인도는 무역과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등 지난 40년동안 반세계화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는 수억명의 가난한 인도 국민들에게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도는 지난 10년간 조금씩 세계화를 추진해왔다.

그 결과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올라갔으며 빈민들의 소득수준과 복지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이 일은 이제 막 시작됐지만 기대는 크다.

그래서 인도 관리들은 추가 무역개방을 논의하기 위해 시애틀에 갔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슨 얘기를 들었는가.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무역자유화는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란 소리를
들었다.

또 다른 이들로부터는 무역을 자유화하려면 산업을 위축시킬 노동규제안들을
마련해야만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미국은 반덤핑법과 섬유보호정책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도 농산물 수입을 계속 제한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의 개방의지는 서방측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놀라운 것은 세계가 확고한 시장개방 정책을 편 지 2년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97년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와 동유럽 남미의 위기는 세계화의 흐름을
역류시킬수도 있었다.

다행히 아직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북미와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세계화의 후퇴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는 비극이다.

무역자유화나 세계화는 인도 소년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무역확대와 그로 인한 경제성장 없이는 인도 소년의 풍족한 삶도
불가능하다.

소년이 일하는 것을 막는 법을 만들면서 무역을 촉진시키는 것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더 심각한 가난만을 안겨줄 것이고 더 나은 교육기회도 주지 못할
것이다.

자유무역은 다른 자유와 마찬가지로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복지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러나 다국적기업들만 부자로 만들어주거나 지구를 파괴하지도 않을
것이다.

무역은 더 많은 경쟁과 기득권층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소수 특권층이 아닌 수백만명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말한다.

한국과 싱가포르를 비롯해 더 많은 나라들이 서구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고
자국 국민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10년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나 다른 형태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가 실패했다는 신호를 보낼 때만 해도 가난한 50억인구는 세계경제에
참여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애틀의 파편들과 함께 이 기회가 날아가고 있다.

[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12월11일자 "The real losers" ]

< 정리=김용준 기자 dialect@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