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서 세상을 변화시킨 영웅의 출현 뒤에는 언제나 이를 도운
숨은 존재가 있었다.

천재의 탄생도 그의 천재성을 미리 알고 지원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미디어랩(Media Lab)도 그러하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미래적 시각을 가진 한 사람(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
의 꿈을 믿고 적극적으로 지원한 또 다른 한 사람(제롬 비스너 전 총장)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네그로폰테 교수와 당시 MIT 총장인 제롬 비스너는 68년부터 7년동안
4천만달러의 후원금을 모아 85년 새로운 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컴퓨터와 사용자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연구하는 미디어랩이다.

이 연구소는 지금 60년대의 벨랩(Bell Lab), 70년대와 80년대 초의 제록스
PARC에 이어 세계 최고의 연구소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랩이 설립되기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존속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에서 미디어랩의 가장 큰 성공을 묻는 기자에게
네그로폰테 교수는 "10년 동안 문을 닫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는 얘기다.

네그로폰테 교수가 "아키텍처 머신"이라는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구소 설립을 시작했을 때 MIT는 심각한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 비스너 총장은 3천만달러를 네그로폰테 교수에게 제공해 다른 교수들
의 강한 비난을 받았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MIT 내부의 반발과 질시를 받았던 것이다.

이 탓에 미디어랩은 연구 내용이 컴퓨터와 관련 있으면서도 공과대학이
아닌 건축대학에 소속됐다.

교수사회에서 흔한 박사학위조차 갖지 못한 38세의 젊은 교수가 내놓은
아이디어에서 디지털 기술의 미래를 읽고 수많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미디어랩의 탄생을 도운 비스너 총장의 혜안과 용기가 없었다면 오늘날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미디어 랩 만큼 극단적인 찬사와 극단적인 비난을 함께 받는 연구소도
드물다.

흥미로운 사실은 찬사는 주로 기업과 언론 등 일반인들로부터 나오는 반면
극단적인 비난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컴퓨터 연구부문에 나온다는
점이다.

특히 네그로폰테 교수를 사기꾼, 미디어 랩을 "학문의 홍등가"라고까지
극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극화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랩이 현재 디지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연구소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네그로폰테 교수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기술개발을 개발자 입장이 아닌 사용자의 입장에서 접근해
가는 것"이다.

컴퓨터와 사용자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해 인간 중심의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인간이 사용하는 미디어들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미디어랩의 주요 연구 내용이다.

미디어랩은 인간과 기계(컴퓨터) 사이의 관계를 기술이 아닌 인간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를 재정립하기 위해 이미 개발된 기술들을 다시 해석하고 재결합
하는 방식으로 기술개발에 접근했다.

이렇게 재개발된 기술은 원래의 기술과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기술로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재결합된 기술은 기존의 기술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

이것이 비교적 적은 연구비로 수많은 연구를 수행하는 미디어 랩의 비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랩의 연간 연구비는 2천만달러를 넘는다.

연구가 호화판으로 수행되고 있다는 비난도 따른다.

고급 연구 결과는 고급스러운 연구환경에서 나온다.

연구원과 연구 과정에 투자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부가가치 높은 연구
결과를 끊임없이 창출하는 미디어 랩과 같은 연구소를 우리나라가 가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이구형 < LG전자 디자인연구소 수석연구원 khleephd@lge.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