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국적기업 천국 네덜란드 ]


눈이 풀어진 채 거리를 배회하는 마약중독자들, 시내 복판에 자리잡은
홍등가...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이라고 하면 이런 퇴폐적 풍경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실제로 요즘도 네덜란드의 대도시에서는 흔히 보게 되는 풍경들이다.

하지만 이는 네덜란드의 일부분일 뿐이다.

로얄 더치 셸, 필립스, 유니레버, 마크로, ING 등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곳 또한 네덜란드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들 다국적 기업들의 위용은 마약중독자나
홍등가의 부정적 이미지를 단숨에 희석시킨다.

한마디로 네덜란드는 "다국적 기업의 천국"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부설 연구기관인 EIU의 1999-2003년 기업환경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면 네덜란드는 어떻게 이처럼 다국적 기업의 천국이 됐을까.

시간을 되돌려 보자.

네덜란드는 천연가스 발견으로 50~60년대 정부재정수입이 갑자기 증가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최고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더치 병(Dutch Disease)"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정부지출은 급격히 증가했고 이에 반비례해 국민들의 근로의식은 나날이
약화됐다.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계속 상승했다.

결국 81년과 82년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10%가 넘는 실업률에
시달리게 됐다.

네덜란드가 더치 병의 대수술에 나선 것은 82년 루베르스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루베르스는 우선 지나친 임금상승부터 억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노.사.정이 헤이그 인근의 소도시 바세나르에 모여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을 체결했다.

빔 콕 현 총리가 당시 노동계 대표였다.

"노조는 임금인상 요구를 생산성증가율 이하로 자제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을 받아들인다. 대신 기업은 고용확대 정책을 취한다"는게 협약의 주내용
이었다.

정부에 부여된 의무는 고용창출을 장려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세금경감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재정건전화에 힘쓰는 것이었다.

이런 협약내용에 대해 처음에는 노사 양쪽 진영이 모두 격렬히 반발했다.

그러나 사용자측 대표인 크리스 반 벤과 근로자 대표인 빔 콕의 상호신뢰와
흔들림 없는 의지는 협약을 관철시켰다.

이에따라 그해 네덜란드 정부는 물가상승률 만큼 자동적으로 임금을
올리도록 돼있던 기존 법안을 폐지하는 한편 공공분야 임금을 3% 삭감했다.

민간기업 근로자들도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했다.

대신 기업들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임시직 채용확대 등으로 일자리 창출에
적극 협조했다.

정부는 또 사회보장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해 복지수혜자의 기준을 엄격
하게 규정하고 실업수당도 삭감했다.

실업자들에 대해서는 직업훈련을 강화해 이들을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려
보내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규직에서 임시직으로 전환한 근로자에게는 소득손실을 보전할 수 있도록
수차례에 걸쳐 조세감면조치를 단행했다.

때문에 근로자들의 실질구매력은 협약체결 전보다 오히력 향상됐다.

노동시장과 사회복지제도의 개혁과 더불어 네덜란드 정부는 경쟁법을 강화
하고 민영화와 각종 규제 완화에도 힘을 쏟았다.

회사설립 규정을 완화해 중소기업의 활성화와 창업의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국영 통신회사와 공무원연금공단 등 공기업을 대부분 민영화했다.

특히 국영통신회사의 민영화는 정보통신 산업의 경쟁을 촉진하여 제품가격
을 하락시켰고, 이는 판매 증대로 이어졌다.

개혁의 효과는 즉각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네덜란드 기업들의 인건비는 84년 이후 연평균 1.2%나 감소했다.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는 다시 투자 및 수출증대, 궁극적으로는 고용창출로
이어졌다.

바세나르 협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83년을 고비로 실업률은 하향세로
돌아섰고 84년부터는 유럽연합(EU) 평균치 밑으로 내려갔다.

작년의 경우 4.0%를 기록했는데 이는 EU 평균 실업률에 비해 무려
6.0%포인트 낮은 수치다.

경제성장률도 97년과 98년 각각 3.6%와 3.8%를 기록, 여타 EU 국가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이처럼 대성공을 거둔 네덜란드의 개혁은 "더치 모델(Dutch model)"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범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99년 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5위를 차지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당시 노동계 대표로 협약서에 서명, 근로자들로부터 "배신자"로 몰리기도
했던 빔 콕이 93년 총리에 선출돼 장기집권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한국이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경제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집어내 냉정
하고도 합리적으로 대처한 부분이다.

82년 루베르스 정부가 취임과 동시에 바세나르 협약을 추진한 것은 "지나친
임금상승이 경제위기의 원인이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루베르스 정부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근로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설득시켰고
결국 협약체결을 이끌어냈다.

또 근로자 기업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합리적인 고통분담을
감수한 점도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더치 모델이 어느 일방에게만 책임을 묻는 식의 개혁이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 파리=강혜구 특파원 hyeku@coom.com 정후영 KIEP 연구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4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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