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21세기는 정보의 시대라며 정보산업계, 특히 컴퓨터산업을 최고
유망주로 꼽는다.

그러나 정작 개인용컴퓨터(PC) 업계의 세계 1인자요, 컴퓨터업계 전체로도
세계 3인자인 컴팩(Compaq Computer)에 2000년초는 생사를 가르는 승부의
시점이다.

컴팩은 1982년 3천달러로 시작됐다.

당시 37세, 몸을 사리기 시작하는 중년 초기의 로드 캐년이 안정적인 직장,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를 떠나 동료 두 명과 함께 1천달러씩 모금해 설립했다.

당시 PC는 애플II가 아니면, IBM AT 모델이 고작이었다.

기업으로서는 사실 AT 모델 뿐이었다.

이런 시절 컴팩은 IBM 호환형 고급제품을 통해 기업들에 대안을 제시했다.

PC가 농담이 아님도 인식시켰다.

개업 첫해 바로 1억달러 매출, 이듬해 3억3천만달러 어치를 팔며 돌풍을
일으켰다.

새 업종의 발아기에 시운을 타고났다.

그러나 더 큰 성공비결은 연합군을 잘 만났다는 것이었다.

85년 인텔이 386칩을 새로 내놓았을 때 IBM은 이를 거부했다.

286칩을 채용한 AT가 최소한 5년은 갈 것으로 봤던 것이다.

이때 컴팩이 대시했다.

이후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칩은 인텔, 하드웨어는 컴팩"
이라는 소위 "윈텔팍" 3자 동명체제가 굳어졌다.

이들의 기술표준은 곧 세계표준이 됐다.

독점적 이윤이 뒤따랐다.

이로써 컴팩은 설립 4년만에 최단기로 포천 500대 기업에 진입하는 신기록
을 세웠고, "윈텔팍"은 전략적 제휴의 세계적 모델이 됐다.

그러나 컴팩은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제품수명이 짧아지는데도 최고 품질,
긴 내구연한을 강조하다가 91년 3분기 적자로 빠져들었다.

이에 이사회는 사내 쿠데타를 통해 전기공학 출신 창립자를 즉각 마케팅
전문가 엑카드 파이퍼로 교체했다.

경영관리 측면에서 아직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기업이 명실공히 현대적
대기업이 되는 순간이었다.

파이퍼 사장은 취임과 함께 40억달러 매출액을 2000년까지 10배 이상으로
끌어올려 업계 2위에 오른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물론 월가는 이를 "꿈이야 자유니까" 하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꿈이 아니었다.

실제로 컴팩은 최소한 외형상으로는 94년 1백억달러 돌파, 96년 2백억달러,
98년 3백억달러 돌파 등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문제도 커져 갔다.

가정용 저가시장을 장악한다며 소비자와 직거래를 터 기존 1천3백여 유통
협력업체들의 반감을 샀다.

중대형 컴퓨터 시장을 공략한다며 이미 정체상태에 빠져 있던 탠덤컴퓨터와
DEC를 큰 돈 주고 인수했다.

모든 제품에 컴팩 딱지를 붙이자 브랜드 이미지가 교란됐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등과의 공조체제도 상호견제로 바뀌었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맞부딪치며 사내 분규가 잦아졌다.

그럴수록 파이퍼 사장은 자신이 설정한 성장신화를 이루고자 모든 것을
측근 3명과만 상의해 밀어붙이는 독선에 빠졌다.

직원들의 애사심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관료주의가 팽배해졌다.

인재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급기야 지난해 27억달러 손실을 봤다.

한때 51달러가 넘던 주가는 18달러대로 폭락했다.

이사회는 다시 한번 쿠데타를 일으켜 지난 7월 정보관리 전문가 마이클
카펠라스로 사장을 교체했다.

카펠라스의 위기 수습 작업은 11월초에야 주가에 조금씩 반영되고 있다.

최근 25달러 선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월가 인내심의 한계는 올해말까지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니 카우보이의 본고장, 텍사스촌의 컴팩 속마음은 지금, "새해가
무서버"가 아닐까 한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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