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기관이 매기는 국가신용등급은 과연 적정하게 평가된 것일까.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한국은 무디스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같은 신용평가기관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처지로 전락했다.

외환위기를 겪고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이들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

이들의 몸짓 하나에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은 춤을 추게 마련이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외환위기로 투자부적격으로 떨어졌다가 지난해부터
투자적격으로 상향조정됐다.

하지만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여전히 투자적격등급중 가장 낮은
Baa3으로 평가하고 있다.

S&P는 지난 11월11일 한국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올렸지만
투자적격 등급중 아래서 두번째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제구조조정이 외환위기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구조조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데 물음표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들 기관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라도 올리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유출입에 취약한 한국자본시장의 조건에 비춰볼 때 이들
기관의 평가에 따라 시장이 급변하는 등 문제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 기관이 국제적 명성을 이용해 외환위기를 겪은 국가들을
농락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나오는 실정이다.

일단 국제신용기관의 신용등급평가로 인해 한국은 심각한 국부유출을 겪는
부작용을 겪었다.

가장 가까운 예가 얼마전 있던 S&P의 한국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건이다.

공식적인 상향조정발표가 있기 전부터 많은 외국자본이 밀물처럼 한국증시에
들어왔다.

또 원화를 사들이고 달러를 파는 양상이 외국투자자들에게 진행됐다.

이를 두고 상당수 국내 외환딜러들은 등급조정 정보가 사전에 유출된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가신용등급 상향이라는 "호재"를 미리 알아차린 외국투자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상당한 투자이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국내 외환딜러들은 외국투자자들이 약 2주전부터 신용등급 조정정보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역외시장에서부터 원화를 공격적으로 사들이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외국투자자들이 정보를 먼저 입수했을 가능성
이 크다"고 말했다.

국가신용등급의 조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자본시장조건을 파악한
외국투자자들이 선수를 쳤다는 얘기다.

이런 사실은 국부유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또 국가신용등급의 조정은 원화가치의 급변동을 불러와 외환당국과 수출업계
에 비상을 걸기도 한다.

최근의 원화가치 상승도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급격히 유입되고 있는 데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오른 데 따른 측면이 크다.

단기 해외자본 유출입에 극히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국 자본시장의
경우 이같은 흐름은 더욱 큰 파장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 지적되고 있는 것이 신용평가기관의 평가공정성이다.

실제로 이들 기관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기 직전까지도 한국을 초우량등급
으로 판정했었다.

그러다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한꺼번에 여섯단계나
등급을 깎아내렸다.

사실 무디스나 S&P가 국가신용도를 평가한 것은 지난 84년부터이다.

아직은 국가신용평가를 위한 자료수집이나 담당인력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많다.

금융계에서는 "한국의 경제회복에 대해 IMF 등 세계경제기관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이들 기관은 신용등급을 올리는 데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비판했다.

또 "앞으로는 신용평가기관의 움직임보다는 국내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내부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김준현 기자 kimj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일자 ).